[충청일보 사설]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연예계, 학계, 정계 등으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차세대 대권주자로 거론됐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JTBC 보도를 통해 폭로됐다. 안 지사의 공보비서인 김지은씨는 이날 출연해 지난해 6월부터 8개월동안 4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안 지사가 지난달 미투 운동이 한참 사회적인 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그에 대해 '상처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며 "하지만 그날까지도 성폭행이 이뤄졌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는 "자신 외에도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서 "국민이 저를 지켜준다면, 그분들도 (피해 사실을 밝히며)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도직후 안 지사는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했을 뿐 강압이나 폭력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6일 새벽 SNS를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모두 다 제 잘 못"이라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안 지사는 "오늘부터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하겠다"며 "다시한번 모든 분들께 죄송하게"고 사과했다. 안 지사 본인이 성폭행 파문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안 지사의 소속 당인 민주당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출당 및 제명조치에 들어가는 등 사태 수습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충남도는 집단 멘붕에 빠졌다. 안 지사의 성폭행 사실여부는 수사를 통해 가려지겠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닌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분노를 넘어 인간적인 배신감이 앞선다. 정치인 안희정이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한마디로 참신성과 정직의 아이콘이었다. 진보정치인이면서도 보수 진영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유연성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지난해 5월 19대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안 지사는 미래의 대권주자로서의 참신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선의의 경쟁끝에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자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고, 대선에서 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문 후보의 볼에 입을 맞추는 신선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 모습에 지지자들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환호했다. 이렇게 차세대 주자로 손꼽혔던 안 지사가 성폭행이라는 씻지 못할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더욱이 안 지사는 성폭행 의혹 보도가 나오기 직전인 이날 오전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3월 행복한 직원 만남의 날 행사'를 갖고 직원들에게 "최근 확산하는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우리 사회를 평화롭고 공정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10개월전 국민들이 보고 열광했던 안 지사가 맞는 지 의심스럴 정도다. 이날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정의롭고 상식 있는 정치인 안희정의 본 모습이 '이미지'였고 '가면'이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까지하다"고 논평했다. 백번 맞는 얘기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오늘은 국민 모두가 우롱당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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