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필자가 결혼한 지 35년이 되었다. 그 많은 시간을 살면서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특히 부엌일은 아직까지도 서툴다.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소홀하다보니 퇴직을 앞둔 지금도 주방은 시어머님의 전용공간이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음식이 없다보니 일 년에 한번 차려드리는 어머님 생신이 문제다. 아버님 생신은 어머님이 준비하셨으니 그나마 걱정이 덜 되는데 어머님생신이 제일 큰 숙제다. 그럴 때면 친정 동생을 불러 음식을 같이 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식당에서 함께 모여 식사를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번 생신에도 식당을 정하고 아들과 동서들에게 연락을 했다. 식당으로 가던 중, 주문한 케이크가 조금 늦어져 늦는다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다. 음식이 차려지고 있는 중에 아들내외가 들어오고 곧바로 펼쳐진 케이크 상자를 열자 모두 와~ 하고 환호했다. 필자는 돈 꽃다발은 봤지만 돈 케이크는 처음이다.

 케이크에 만 원짜리가 화려한 꽃모양을 이루고 있고, 그 안에는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 손자♡손자며느리, 생신 축하드려요"라고 쓰여 있다. 울 시어머니 눈과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셨다. 평소 생신 때엔 케이크도 못 사게 하셨던 분이다. 먹을 것도 없는 게 비싸기만 하다고… 여든 일곱 개의 초를 꽂고 점화하니 꽉 찬 꽃불이 아름답게 일렁인다. 며느리가 케이크를 맞춘다고 할 때도 이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속에 동서들이 준비해온 봉투를 드리니 고맙다며 받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행복해 보인다. 손자며느리가 준비한 특별한 생일케이크가 어머니의 기분을 더 업그레이드시켰을 게다. 필자는 35년을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고마운 마음을 말로 잘 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간단하게나마 편지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생신이나 어버이날 등에 항상 편지와 함께 용돈을 드린다. 말로는 다 표현을 못하지만 편지로는 마음껏 적을 수 있어 그 방법이 참 좋다.

 이번 생신날에도 축하 메시지에 평소 감사함을 담아서 용돈과 함께 드렸다. 이튿날 어머니 친구들이 다녀가셨는데 그 편지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셨단다. 그 이후로도 어머님의 며느리편지 자랑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별것도 아닌데도 저리 좋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짠하다.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머님께 편지를 쓸 시간이 오래 주어지길 바래본다.

 며칠 전 필자도 생일날에 귀한 편지를 받았다. 며느리가 그림엽서에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다. 며느리 생일 때도 편지를 써 보냈더니 가벼이 넘기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었었나 보다.
편지를 읽으면서 "아~ 편지 받는 기분이 이렇구나!" 마냥 행복했다. 내용 중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생일 때마다 정성어린 편지를 주는 집이 몇 집이나 있을까요? 저는 정말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늘 고맙고 대견한 며느리이지만 오늘은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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