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웅ㆍ소설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한때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지금 그 말은 아주 오래된 원시 언어처럼 묻혀졌다. 새롭게 번지고 있는 말로는 '친환경'이라는 말이 있다. 이 언어는 어제 오늘에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처럼 부각돼 있다.

친환경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작게는 우리 주변의 생활환경에서부터 크게는 지구의 자연 보존과 우주 오존층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게 적용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친환경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먼저 우리 자신의 몸이나 정신마저 친환경적인지 반환경적인지 돌이켜 볼 수 있다.

친환경적이라 함은 모든 사물의 상생을 말하는 것이고, 반환경적이라 함은 상극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놓고 보면 그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상생이라고 보고, 그 자연의 모습을 거슬리는 것을 상극이라고 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상생과 상극이 있다.

그것을 주역에서 풀기도 하는데, 역학에 근거한 상생과 상극을 논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다만, 여기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타고난 사주에 근거한다기 보다,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품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물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도 좋은 상생의 인연을 준다.

그렇다면 반환경적인 인물, 즉, 상극을 초래하는 인물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침을 뱉는 사람. 질서를 지키지 않고 세치기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편, 도둑질을 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들도 반환경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언뜻 생각하기에 반환경적인 것과 무관해 보이지만, 실제는 그런 인물들이 반환경적이며 상극인 자들이 있는데, 바로 사회의 지도자 가운데 반사회적인 일을 하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이코패스라고 볼 수 있는 연쇄살인자는 자기가 죽인 피해자에 대해서 조금의 죄의식도 없다. 그는 자기가 재수가 없어 잡혔 듯이 죽은 사람도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이코패스만이 죄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그런 반환경적인 인물이 눈에 띈다.

그들은 뇌물을 주고받고, 협잡을하여 음모하고, 회사 돈이나 나라 공금을 횡령한다. 그러다가 발각이 되면 재수 없게 들켰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바로 이와 같은 인물도 반환경적인 인물이며, 우리 인류에 상극이 되는 존재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