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화초의 마른 잎을 떼어낸다. 겨울을 이겨낸 용사들이다.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받침대의 아랫부분에 하얗게 핀 곰팡이가 눈에 들어온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살던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물로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아서 수세미로 벅벅 문질렀다. 물기를 닦아내고 안방으로 모셔왔다. 한쪽 자리를 차지한지 사나흘 후에 꼬들 거리더니 일주일쯤 지나서야 바싹 말랐다. 흡사 그의 몸은 핏기 잃은 폐병환자 같았다. 유채기름을 자투리 천에 묻혀 결의 방향을 따라서 부드럽게 문지른다.

 볕이 잘 드는 곳이었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일까. 생각지도 못한 곰팡이를 보며 그에게 미안함 마저 들었다. 살다보면 믿었던 만큼 실망하고 상처 입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인가보다.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도 통념의 기준을 벗어나는 행동을 보았을 때 실망감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상처를 더 입는다. 그로인해 삶이 황량해지기도 한다. 속없이 더불어 살아보자고 했던 일들이 걸림돌이 되어 돌아온다.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가슴 한쪽이 어릿해진다. 그는 스스로 기름칠은커녕 곰팡이를 씻어 내지도 못한다. 세상살이는 돌이켜보니 상처 입은 나를 누군가가 보듬고 따스한 양지로 옮겨 준적이 있다. 잊고 지내다가도 한 번씩 떠올랐다. 세월이 지나 신은 내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허락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다며 세상으로 돌려주길 바랐다.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있는 이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의 눈은 간절함이 가득했다. 어느 순간 살고자하는 눈빛이 변질되어 욕망으로 불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차근차근 걷기보다는 그저 저 멀리 평탄한 길을 걷는 이를 부러워만 한다. 그 길까지 가려면 맨발로 가시밭길을 헤치며 걷기도 하고 가시넝쿨 사이에 돋아난 새순을 뜯어 허기를 달래야 한다. 한 줌은 허리춤에 매달아 보릿고개에 꺼낼 비상식량이다. 절박함 없이 남의 손에 든 떡만을 욕심낸다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선지 낭떠러지 위에선 그들의 모습이 아찔하다.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좁혀진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현실이 제대로 보인다.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그것이다. 내가 화초대가 되어 누군가가 기름칠을 해주는 호사를 누리든지 기름칠을 해주는 전능한자가 되든 우선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생각이 이쯤에서 멈추자 뻔뻔하게 남의 인생에 편승하려 했던 적은 없는지 뒤돌아본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욕망으로 불타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조금 더 먼저 산에 오르려고, 더 많이 갖으려 안간힘을 쓴다. 한술 더 떠 잘 풀리면 나의 노력의 대가이며 길이 막히면 손을 내밀었던 이가 방향을 잘못 가리켜주어 그렇다고 화살을 돌린다. 이런 내가 겨우내 고생한 화초대를 기름 먹이면서 마음 비우기를 한다. 비워진 마음에 천천히 옷이 입혀진다. 어쩌면 화초대는 투영된 나의 모습이기에 정성을 들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