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지난 2월 25일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금 5, 은 8, 동 4, 종합 7위, 당초목표에는 조금 못 마쳤지만 동계올림픽사상 최다인 17개 메달을 거머쥐며 한국이 스포츠 강국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설상과 빙상에 연일 불꽃 튀는 명승부가 펼쳐졌고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했다. 대회 기간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나는 2월 15일에 있었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500m 경기를 고를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의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두 선수 사이에서 우승의 향배가 가려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이상화는 '여제(女帝)'라 불리며 그동안 세계 빙상계를 호령해왔다. 이 종목의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2010년 벤쿠버, 2014년 소치,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건 절대강자이다. 한편 고다이라는 작년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000m의 세계기록을 갈아치우고 500m에서도 국내외대회 24연승을 기록 중이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세간의 관심이 모두 이 경기에 집중되었다.

 결과는 고다이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36초94, 올림픽 신기록이며 저지(低地) 경기장 세계신기록이었다. 그런데 환희의 그 순간 고다이라는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쉿!", 흥분돼 목청껏 성원을 보내는 일본인 응원단을 향해 그녀는 검지를 세워 입 앞에 갖다 대는 모습을 보였다. 한 번, 두 번..., 다음 차례에 경기를 치를 이상화를 위해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다. 이상화의 기록은 37초33, 불과 0.39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이 가려졌다. 일본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역사상 첫 금메달 획득의 순간이었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상화의 눈에서는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고다이라가 먼저 이상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았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각종 대회에 함께 출전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스물여덟과 서른하나, 고다이라가 세 살 언니다. 일찍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상화가 뒤늦게 세계무대에 데뷔한 고다이라를 자주 챙겨줬다. 하루는 한국에서 경기를 마치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하는 고다이라에게 이상화가 택시비를 내준 적도 있었다. "제게 상화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그녀를 존경합니다." 국가대표라는 중압감을 등에 지고, 단 한 번의 기회에, 1/100초를 겨뤄야 하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기에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언론들도 "마치 한 나라의 두 선수가 금, 은 두 메달을 나눠 탄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우정은 경기장의 얼음을 녹일 정도로 뜨거웠다."고 그 감동을 전했다. 나란히 경기장을 돌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두 선수에게 관중들은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상화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지고 고다이라의 어깨는 일장기가 걸쳐져 있었지만 그곳에는 적도 원수도 없었다. 때로 인간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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