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글을 쓰기 위해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에 키를 돌린다. '키-잉'하는 예리한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밤새 안녕했는가를 묻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신과 같은 초능력을 발휘하며 나의 손과 발이 되어 거리를 누비는 자동차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작업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 치우곤 한다. 자동차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 고정된 주파수에서 A Time For Us가 막 시작되는 찰나다. 음악이 시작되자 그 옛날 아련했던 시간과 애틋한 두 연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7080세대에게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온 세상을 그저 장밋빛으로 물들여 주었고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나'만의 소설을 이어가게 했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혜 '상상력'은 지구가 우리 삶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라고 생각했던 시각을 우주로 펼칠 수 있도록 했고, 때로는 자동차가 로봇이 되어 우주의 적과 싸워 지구를 지키고, 바다에 뛰어 들어 물고기들과 대화하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모든 과학적인 발명에는 상상력이 원천이 되었다. 비단 과학에서 뿐 아니라 모든 인문학적 작업(시, 소설 등)에서도 상상력이 영감이 되어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조엔 롤링은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우울증까지 겪으면서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상상했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어 상상력의 무한함을 입증했다. 일본의 차기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야쿠르트 선두타자가 좌중간 2루타를 친 순간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를 지켜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조엔 롤링에게 있어 '기차'는 스토리 라인의 중요한 포인트다. 시작과 말미에서 늘 기차가 등장하는 이유다. 하루키 작품에는 야구와 야구장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Perfume:The Story of a Murderer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 그루누이는 초인적인 후각의 소유자.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비로운 향기에 이끌려 찾아간 곳에서 만난 빨간 머리의 소녀. 그녀의 체취를 통해 무한한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았지만, 실수로 소녀를 살해하게 되어 소녀의 향기를 영원히 잃게 된다. 영화는 잃어버린 빨간 머리 소녀의 향기를 재현하기 위한 그루누이의 광기어린 행동을 그리고 있다.

 주로 그림·음악·문학에서 '영감(靈感)'으로 번역되는 Inspiration에 대해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W.타타르키비츠는 '정열로 불타오르지 않고 광기와 같은 것으로 영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의 기록을 인용했다. 자기검열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 검열은 무력으로 언론에 대해 관여를 하거나 광고주의 안중을 살필 때 벌어진다. 즉 권한이 있는 쪽 의지에 일방적으로 기대야 하는 균형의 논리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다 보니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도 힘의 논리가 발현한다. 진정한 문명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문하는 오늘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