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어느덧 경칩과 춘분도 지나며 약동하는 봄이 오고 있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산불과 식수(食水)도 걱정했는데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즐길 수 있고 산불 걱정도 없어 무척 다행스럽다. 지난 월요일, 친구들과 상당산성을 가려다 못 가고, 종일 내린 봄비를 보며 온갖 상념에 잠겼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에서 여러 문제를 야기(惹起)한다. 폭우, 산성비, 미세먼지, 각종 공해 등이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가뭄 끝에 봄비가 내리면 겨우내 움츠렸던 초목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식물들은 새순을 내밀며 부쩍 큰다. 빗물은 하늘로부터 질소를 머금고 내려온 천연물비료이다. 연초록 잎과 땅속의 뿌리가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리고 대지가 꿈틀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텃밭과 화분에 물을 줄 때 겪었듯이 수돗물로는 갈증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빗물의 기적이다.

 오늘날처럼 편리한 문화생활을 멀리하고, 대자연의 품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연과 동화되어 마음을 비우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을 볼 때도 자연의 위대함을 알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온갖 역경을 극복한 교훈을 준 선수가 많았다. 특히, 여자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제이미 앤더슨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하였다.

 그녀는 명상을 즐기는 자연주의자라고 한다. 평창에 오기 전에는 고향인 캘리포니아주 타호(Lake Tahoe)에 들러 자작나무 숲을 걸었다. 엄마 품에서 사랑을 받는 아이처럼 나무를 껴안고 기(氣)를 받았다 한다. 칼바람 속에서 극도의 긴장이 따르는 경기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드를 탈 수 있는 것도 자연을 사랑하고 명상한 덕분이었다. 필자가 강화도 마니산에 갔을 때, 기가 많이 나온다는 곳을 보고 무척 신기하게 여겼지만, 산속에서 나무와 벗하며 기를 받는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는데 이런 오묘한 경지를 배우고 실행하고 싶어진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을 보다 깜짝 놀랐다. 개막식은 기본적으로 올림픽의 '오륜'과 '오행'을 상징하는 강원도의 다섯 어린이가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해나라, 아라, 푸리, 비채, 누리라는 고운 이름의 다섯 어린이가 붉은색, 검은색, 파란색, 흰색, 노란색의 오방색의 옷을 입고 불, 물, 나무, 금, 흙을 연출하여 전 세계로 우리나라 고유의 철학과 문화를 자랑하였다.

 사람과 흙과 나무와 꽃은 하나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라고 하는데, 우리 고장 청주에서도 산림까지 없애며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만드는 것도 자연을 파괴하는 것 같아 너무 우려스럽다. 미분양 아파트도 점점 늘고 있다는데……. 사람은 누구나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와 새 등 모든 동식물이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상생(相生)하여야 한다고 소록소록 내리는 봄비가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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