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빨아서 깊숙이 넣어 두었던 모자가 달린 오리털 파카를 다시 꺼냈다. 이 외투는 바람이 많이 불거나 몹시 추운 날에 바람이 드는 머리와 시린 볼을 감싸주어 겨우내 애용하던 외투이다. 3월에 방한용 옷은 생경했지만, 거리에 나서보니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더러 보였다. 필자의 모친은 머리와 뼈마디에 바람이 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바람이 어떻게 사람 몸으로 들어온다는 건지 알 수 없고 예쁘지 않은 남동생의 털모자를 쓰거나 난롯불에 태운 낡은 바지를 덧입던 어머니 모습이 궁상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철없는 자식은 어머니가 허언을 일삼는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몸 안으로 바람이 드나드는가. 그런데 내 몸에도 바람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추운 날은 물론이고 지금처럼 꽃샘바람이 부는 날이면 바람은 어김없이 머리와 무릎과 발목을 훑었다. 바람 든다고 호소하던 어머니는 훈풍이 불던 날에 떠나셨다. 장지로 떠나는 날 아침, 영구차에 관이 실릴 때, 꽃비가 내렸다. 후드득 바람이 불어 꽃이 질 때, 가뜩이나 매운 코끝이 더 매워 많이 울었다.

 3월의 어느 날 밤, 1남 3녀의 자녀가 대문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이 찍혔다. 언론사들은 기사마다 자녀의 눈물을 언급했고 눈동자가 붉은 사진을 실었다. 필자는 엉뚱하게도 사진 속에서 눈물을 찾았다. 자식이라면 영어의 몸이 되고자 떠나는 부친을 보고 당연히 오열해야 한다. 샐러리맨의 자식에서 시장의 자식, 대통령의 자식으로 살았으니 그들이 가졌던 자부심만큼 더 많이 오열해야 한다. 엄연한 증거가 넘치는 범법자 신세일지라도 자식이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듯 울어야 한다.

 필자는 그들 가족간의 가족애를 알 바 없고 그들이 뿌리는 눈물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다. 세상에 떠도는 죄목이 그의 말대로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가족끼리 집안에서 눈동자가 붉어지도록 울고 대문 밖까지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면 더 당당했어야 했고 국민을 상대로 동정심 따위를 유발하려는 의도는 애초부터 가지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부모라면 자식까지 불구덩이와 물구덩이로 끌고 들어가지는 말았어야 했다. 

 어린 시절에 겪은 강렬한 경험의 상처는 어른이 돼서도 내면 아이, 혹은 어른 아이로 살게 한다고 한다. 몸은 어른이지만 치유되지 못한 상처 때문에 마음이 어린이 때로 머문다는 것이다. 그는 술지게미를 먹고 자랐고 풀빵 장수를 하여 공부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집필한 '어머니'라는 책의 개정판에는 이런 소회의 글이 있다. "자녀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부모는 자식을 말과 지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모습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자식의 최종 보루는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는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질 때, 납치극을 벌일 때, 삶의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문 앞에 자식을 세워놓고 배웅을 받으며 나처럼 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싶었을까? 아니면 실패를 인정하면 부정당할까봐 실패조차도 성공이라고 우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검찰 차에 오르려는 그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성장기가 곤궁했다는 그의 무릎에도 바람이 드나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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