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원 前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권신원 前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얼마 전 뮤지컬 「명성황후」를 관람했었다. 오랜만에 공연을 보는 터라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공연은 공연 내내 많은 생각을 일으키고, 착잡한 마음에 공연 후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을미사변'으로 일컬어지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은 우리의 슬픈 역사 중 하나로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일본 낭인들에 의해 자행됐다. 경복궁을 습격한 이들은 건청궁에 머물던 궁녀들과 황후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불태워 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실제로 이 사건은 철저하게 준비된 일본의 군사 작전(작전명 '여우사냥')으로 조선 주재 일본공사인 미우라 고로우의 지휘하에 일본군과 경찰이 가담하였다.

 당시 일본은 사건의 주동자를 민씨 가문과 정적이던 흥선대원군으로 몰아 자신들과는 무관함을 뻔뻔하게 주장하며 발뺌하다가 서구 열강들의 치밀한 조사와 항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미우라 고로우를 비롯한 수십 명의 범인을 구속하였다. 이후 히로시마 법정에 회부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으로서, 이들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 받고 석방되는 파렴치한 재판 결과를 만들어 냈다.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구시다 신사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인 '히젠토(肥前刀)'를 보관하고 있는 것인데, 이 칼집에는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一瞬電光刺老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신사에서는 '황후를 이 칼로 베었다'라고 적힌 문서도 함께 보관중이며 최근까지도 이 칼을 공개하여 전시하다가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비공개로 전환하고 이 칼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한 나라의 황후를 시해할 수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 만행에 사용된 흉기를 유물로서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 정부에 범행의 증거품으로 압수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심지어 "사건 당시 황후가 궁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칼이 정말로 명성황후의 목숨을 멎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했다는 신사 관계자의 설명은 너무나도 비통할 따름이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고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던 도중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대한제국의 황후를 시해한 죄'였다고 한다. 시해사건이 얼마나 우리민족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 민간차원에서 시해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국회에서도 일본 정부로 하여금 이 칼에 대한 적절한 처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국민 모두에게 결코 끝나지 않은 위안부 합의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일 관계에 있어 왜곡된 역사문제를 항상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담대한 자세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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