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이미 늦었다. 며칠 전 춘분 때 내렸던 하얀 눈은 꽃을 시샘하여 내린 것 치고는 기록적인 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추위가 봄을 시샘하기에는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4월이 됐으니, 다시 오기에는 늦었다. 이번 봄은 유난히 춥고 이상 기온으로 움츠려 있었던 겨울을 힘겹게 보내고 맞이하기에 더욱 기다리던 봄인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봄날 같은 사람> 중에 '너무 따스하기에 너무나 정겹기에 너무나 든든하기에 언제나 힘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은 봄날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봄날 같은 사람이 기다려지는 계절이 왔다. 이번 달 4월이 가면 가정의 달 5월이 온다. 온통 푸른 나무들과 꽃들이 수놓는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로 시작하여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많은 행사가 있는 분주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정한 날에 어울리는 이러한 사람은 아마도 배려심이 많은,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봄날 같은 사람'일 것이다.

 최근 행정관청에서 역지사지를 실행하고 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서초구청에서는 '체인징 데이'라는 행사를 1년여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국·과장이 서로 업무를 바꿔 근무하도록 하여 시행 1년여 만에 실무를 책임지는 주무팀장까지 확대 운영한다고 한다. 년간 총 5회에 걸쳐 200여 명의 간부가 참여했으며 업무 투명성 확보,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어낸 협업행정을 끌어냈다. 또 '2017년 서울시 자치구 청렴도 1위', '국무총리상' 수상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단다. 이들은 하루 동안 서로 다른 직렬의 부서로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했다. 시행 결과 할거주의의 틀 속에 있던 공무원들이 다른 부서의 중요성과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 협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대학원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병원에 재직하고 있는 간부직원)들에게 수업시간에 꼭 당부하는 사안이 있다. 병원에서 신규직원을 선발할 때에는 현장에 투입하기 전에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같이 생활하는 과정을 교육일정에 넣도록 부탁한다. 환자의 입장에 서서 저들의 고충과 입장을 밤새 생각해 보는 실제 훈련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서 환자를 배려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겪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은 때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참고 견딜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5월이 오기 전에 이번 달에 적어도 소중한 가정을 생각하면서 내 가정의 다른 구성원의 역할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해해 보도록 하자. 이것은 말은 쉬워도 막상 실천하기에는 미리 준비가 필요하고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상대가 바라보는 관점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자기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대가 보는 시각에서 같이 바라볼 여유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4월이 시작됐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배려의 마음을 키워가며 이번 달을 잘 준비하여 각 가정이 바로 세워지는 소중한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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