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봄이 온다. 휘청거리며 봄이 온다. 봄이 오는 길은 험하고 험했다. 봄바람이라고는 하나 나는 아직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봄바람은 뼈 속 깊이 파고들어서 몸살을 나게 한다. 연례행사처럼 된통 한차례 몸살을 앓고 나면 여기저기서 꽃망울들이 툭툭 터졌다. 꽃샘추위에 오들오들 떨던 꽃망울들도 나처럼 지독한 꽃 몸살을 앓았을 게다. 춘설이라고 하지만 수시로 삼월에 내린 눈은 오도가도 못 하게 발목을 잡기도 했다.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뿌연 미세먼지들로 가득했다. 원인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발원지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바람처럼 흘려버린다. 희미한 먼지 안개 속에서도 세상은 봄을 꿈꾸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최대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바라보는 세상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미로 같았다. 그 속에서도 봄은 용케도 길을 잃지 않고 찾아왔다. 그 혼탁한 봄바람 속에 수군수군 대던 바람난 소문들이 뉴스를 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처럼 발원지는 확실한데 하나같이 나는 아니라고 발을 빼고 오히려 무고죄를 운운하면서 뉴스에 나와 목청을 높힌다. 그러다가는 덜미가 잡히고 나면 그 난감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고는 했다. 부끄러워서 인지 죄책감 때문인지도 명백하지 않은 채 그들은 떠났다. 어떤 죽음이든 그 앞에서는 애도하고 위로하는 것이 인지상정 이지만 모두 외면하고 침묵했다.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족들과 피해자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씩을 얹어 놓은 채 말이다.

 드라마 보다 흥미 있고 쇼킹한 뉴스시간이 기다려진다. 한때는 거물이었지만 추락할 때는 새보다 가볍게 떨어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인간적인 연민의 마음도 들었다. 그들에게 보냈던 뜨거운 성원과 지지가 배신으로 돌아온 이봄은 꽃이 피어도 달갑지 않은 씁쓸한 시간을 보낸다. 꽃들이 아름답게 툭툭 앞 다투어 피어나야 하는 이때에 여기저기서 툭툭 터지는 소리들은 나도요, 나도 당했어요. 나도 동참합니다. 라고 외친다.
 
 기억도 제목도 희미한 소설 속에서 바람난 청상과부와 동네 유지어른의 소문이 파다해지자 그 청상과부는 목을 맨 채 죽음의 길을 택하고 유지어른은 그 후로도 떵떵거리면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 그것이 여자의 미덕이고 남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 문득 흑백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 이제 거꾸로 된 세상을 살고 있다. 여자들은 꼿꼿이 얼굴을 들고 살고 남자들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인다. 분명 양성평등 시대가 되었으니 여성이 목소리가 커지긴 하였지만 진정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여성에게 양성평등은 가치가 빛난다.

 힘의 원리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도덕성이 바탕이 된 사람들이 큰일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봄이 되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주변 환경을 바꾸듯이 오랫동안 잘못된 관행 부패와 폐단들을 대청소하는 계기가 되면 싶다. 또 다른 미쓰리와 미쓰김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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