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무심천에 벚꽃이 예상보다 일찍 만개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일상의 모습이 늘 분주하다보니 세월의 오고감에 감흥도 사라지는 것 같다. 꽃구경가자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데도 몸이 서둘러지지를 않는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앞세우고 나름의 갈등에 시달린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만개한 벚꽃도 때가 맞지 않으면 그조차 보기 힘든 일이라며 누구보다 앞서서 소란을 떨곤 했었는데,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만개한 밤 벚꽃 구경이 장관이다. 춥고 긴 겨울을 견뎌내느라 단단하고 야무져진 가지들을 뚫고 피워 올린 꽃들이 대견하다. 업무상 오고 가는 길에 힐끔 쳐다 본 탓인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들이 만개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싶었는데 하루 이틀 만에 꽃들을 활짝 피워 올렸다. 하루는 여름, 하루는 겨울을 오고가는 변덕스런 날씨 탓에 꽃봉오리들이 화들짝 놀란 탓인가! 꽃구경 나온 이들이 바글바글하다.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은 물론 벚꽃나무 길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길을 가야 했다.

만개한 벚꽃은 필자의 표현능력 부족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한마디로, 응축시켜본다. 장관이다! 세월을 품은 벚꽃나무 일수록 수형과 자태가 달랐다. 수령이 어린 나무는 꽃잎도 꽃송이도 귀엽고 앙증맞다. 고목은 우람한 무게감으로 풍성하게 꽃을 피워냈다. 물론 품종에 따라 특징이 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저 필자의 느낌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기가 만연된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꽃이 만개한 걸 보면 봄은 봄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아직도 겨울인 이들이 있다. 미투 운동이 확산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물론 그들 주위의 모든 이들까지 상처를 안고 간다. 이런 일들이 비록 겉으로 드러난 일에만 국한되었을까!

밤 벚꽃구경의 분위기가 사랑스럽다. 젊은 남녀 커플들과 어린 중고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웃고 재잘거리는 모습들이 활기차다. 회갑이 지난 여인들 서넛이 그들 틈에 끼여 어린 학생들의 노는 모습들을 보고 있었다. 문득 딸을 둔 친구가 딸의 소재를 파악하며 너무 늦지 않게 귀가하라는 전화를 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다보면…!’ 나이 들어 이는 노파심에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저 아이들이 지금처럼 맑고, 밝고, 건강하게 자신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기성세대들이 지켜줘야 한다. 저 어린 꿈나무들이 걸어가는 길들은 어둡고 무섭고 두려운 길이 아닌, 밝고 환하고 아름다운 길들이길 소원해본다. 무심천 둑으로 하얗게 피어난 벚꽃들이 오늘따라 더욱 소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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