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물러설 것 같지 않던 추위도 이제 봄꽃 향기에 밀려난 듯하다. 이전보다 마음이 한결 따뜻하고 가볍게 느껴짐은 희망의 속삼임이 아닐까 싶다. 환영이든 착각이든 기운이 다른 계절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계절은 자연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특히 온갖 꽃이 절정을 이루는 4월은 아름답다. 단지 꽃이 아름다워서 열광하는 것일까. 꽃을 피우는 자체가 식물에게는 사랑의 최고의 몸짓이기 때문이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생명력을 뿜어내는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손짓하며 유혹한다. 사랑에 약한 동물인 인간이 꽃의 순수한 사랑에 매혹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봄이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지난 혹독한 겨울 탓이다. 내면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에 굴복한 사람이라도 따사로운 햇살과 포근한 바람에 마음이 저절로 열린다. 더불어 경직된 근육이 기지개를 켜고 육신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봄은 지나간 겨울에 빚을 지고 호사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 다소 겨울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 나름 의미가 있다. 계절의 순환처럼 사람도 삶의 과정에서 이전 세대와 일어난 사건에 영향을 받으며 빚을 지고 살아간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창조는 절대자 외에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에든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바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과연 잘나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월의 흐름이나 환경적 변화에도 온전한 가치를 지키면서 시대적 상황에 맞추는 센스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쫒아가느라 힘들어하며 방황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아야할 것과 변해야할 것 사이에 균형감을 가지고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알베르 까뮈 소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를 통하여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로원에서 죽은 날조차 모르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 친구와 사랑행위에 빠지게 되고, 우연히 해변에서 친구와 다투고 있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리고 재판관의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햇빛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판관을 비롯한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결국 사형이 선고된다. 감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과 별과 자연이 인간에 무관심하게 보이는 것과 자신이 인생에 대해 갖는 무관심한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으며 행복을 느낀다. 과연 주인공은 부도덕한 사람인가? 세상은 저지른 범죄보다 관습과 질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 같다.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근원적인 부조리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방황하게 되고 부딪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타인의 세계에 앞서 도착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가 균형을 잃으면 원상으로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다. 현실에 머무르는 연습을 해야만 과거와 미래에 매몰되지 않는다. 자신이 존재하는 삶의 대지를 오롯이 걸어갈 때 꽃과 나무를 보고도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삶이란 소통이 계속 어긋날지라도 마음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찰나적 순간을 위하여 삶을 지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물어보는 안부에도 팍팍한 마음이 조금 풀릴 수도 있고, 무심코 내뱉는 누군가의 말에 힘을 얻고 살아가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위에 따뜻한 안부와 위로를 하는 습관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경쟁 분위기에 함몰되어 살아가면 긴 인생의 여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에 적응할 수 없다. 온통 바깥 세상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존은 존재에 앞선다는 말이 있다. 삶에 대한 조급함보다는 여유로움으로 스스로 불안감을 해소하고 편안해질 수 있는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 화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데이지꽃말처럼 순진하고 겸손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뿜어내는 봄 향기의 매력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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