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신라에는 선덕왕, 진덕왕, 진성왕 세 명의 여왕이 있었다. 왕족정치라는 시대적 특성도 있었지만 유교사회의 조선조와 달리 남녀차별이 없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됐다.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밤늦도록 길쌈을 하고 가무를 즐기는 등 비교적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풍속이 있었다.

 이 시대 여인들의 풀꽃 같은 향기로움은 노래로, 춤으로, 문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처럼 신라시대 절세의 자색이었던 수로부인은 지아비인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 동해 바닷길을 함께 가던 중 천길 석벽의 철쭉을 보고 꽃을 꺾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의 발길이 미칠 수 없는 곳이라 함께 가던 일행 모두가 수로부인의 요청을 거절했는데 소 한 마리를 끌고 길을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며 노래를 불렀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날 아니 부끄러워하면, 이 꽃을 바치오리다." 이어 바닷가의 정자에 이르러 점심을 먹으려는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남편 순정공은 주변 사람을 시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남의 아내 훔쳐간 죄 얼마나 크냐.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너를 잡아먹겠다."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언덕을 치니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선덕왕이 지혜로 빛났다면 진덕왕은 감성이 풍부했다. 선덕왕은 즉위하여 신라의 아홉 적을 물리치고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황룡사 구층탑을 세웠다. 김춘추와 김유신 같은 비주류를 발탁하면서 신라 발전의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했다. 진덕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의 충정을 뒷받침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진성왕의 실정(失政)으로 신라가 멸망의 길로 빠졌지만 150여 년간 이어졌던 중앙귀족들의 왕위쟁탈전과 수탈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화려한 금속공예가 절정이었고 그들만의 독창적인 문화의 숲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여성 통솔자가 있었고 여성의 활동이 자유분방했으며 여성의 미를 숭상했던 유미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3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세상이 온통 '미투'로 얼룩졌다. 억울하다는 남성들의 아우성도 있겠지만 성(性)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남성주의의 폐단이 가져온 비극이다. 성은 욕망이 아니다. 소유와 권력은 더더욱 아니다. 성에 대한 반듯한 인식과 여성의 사회적 활동의 자유로움,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명확히 할 때 사회가 더욱 행복해 진다.

 핀란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사회참여가 자유롭고 활발했다. 여성 총리, 여성의장, 여성 장관 등 여성 정치인이 많고 여성의 취직율이 50%를 넘는다. 임신에서부터 육아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원시스템이 좋기 때문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공부하고 도전하며 국가와 지역발전에 일익이 되고자 힘쓴다. 그 결과는 복되고 값지다.

 6·13 지방선거에 여성들의 도전이 눈에 띈다. 단체장 예비후보도 있고, 도의원이나 시군의원 출마자까지 충북에만 50여 명이나 된다. 여성할당제 등을 이유로 비례대표 의원을 공천하던 예전과 달리 직접 현실정치에 뛰어들고 있다. 여성 경영인도 늘고 있고 여성의 공익활동 역시 활발하다. 여성의 도전이 아름다운 세상, 여성이 행복한 사회, 여성의 활동과 권익이 보호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성도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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