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비가 내린다. 연분홍 고운 옷을 입은 벚나무들이 줄을 맞추어 두 손 번쩍 들고 봄비를 즐긴다. 까치집을 어깨쯤에 얹은 나무 앞의 전깃줄에는 까치가족이 나란히 앉아 웅성거린다. 그날은 햇볕은 따스했지만 가슴 한 켠엔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숙부님이 입원하셨다는 기별을 듣고 우리 형제들은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삭정이 마냥 앙상한 손을 허공으로 두 어 번 휘저으시더니 이내 내려놓으시며 연신 눈물만 흘리신다. 오랫동안 잊으려 애썼던 병상의 아버지 모습이 어릿하다.

 우리집은 주말마다 사촌들로 북적댔다. 산과들에 꽃이 피어나는 이맘때쯤부터 숙부는 아이들을 반 강제로 데려왔다. 어린 눈에는 독재자로 보였다. 국수 삶아 한 그릇씩 먹고 나면 숙부님의 지휘에 따라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일손을 도왔다. 힘든 법도 한데 투정하지 않고 저녁때는 깔깔대며 장난치다가 호통을 듣기도 했다. 숙부님은 우리집의 농사일에만 신경 쓰신 게 아니다. 월급을 받으면 당신의 가정살림 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친인척들을 돕느라 봉투는 늘 얄팍했다. 덕분에 숙모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직에 계신 지아비를 대신해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삼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그해 봄, 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 취업을 했다. 기쁨도 잠시 야유회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그는 한줌의 재가 되었다. 세상은 불공평 했다. 열심히 살아 온 그분들에게서 신은 아들을 빼앗아 갔으니 말이다. 집안 분위기는 더없이 암울했다. 두 분은 칩거나 다름없는 세월을 보내셨다. 어쩌다 뵙게 되더라도 철없던 나는 모른 체 하는 게 위로라 여겼다.

 부모가 되고 숙부님의 그 때쯤의 나이가 되어보니 가끔은 아픈 곳을 쿡쿡 눌러 한 번씩 대성통곡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맣게 탄 가슴의 재를 털어내고 시원해질 때까지 눈물로 씻어내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담을 수 있어서 일게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보다 이제는 소중했던 순간들을 추억하셨으면 한다.

 오랫동안 집안을 위해 일해오신 것을 누군가에게 물려 줄 때가 되었다고 여기셨는지 생질들을 불러 모은다. 남동생과 언니가 참여하기로 했다. 먼저 가신 형제분들은 대신해 어른 노릇을 하시느라 진이 빠져버린 손을 잡아 드리는 일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바쁘다고 핑계 대는 나의 이기심이 죄송스럽다. 전깃줄에 앉아 꽃 속에 묻혀버린 제 집을 바라보는 까치의 눈은 나의 마음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둥지를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기도 드리는 순간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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