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어깨를 적시는 가랑비가 아니라 봄을 시샘하는 풍우로 꽃비가 내리는 캠퍼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둥지를 틀더니 낯선 장비들이 이 곳 저 곳에 배치되고, 내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이 어느새 검찰청으로 둔갑했다. 심심찮게 마주치는 이런 낮선 풍경은 모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한 세트장이다. 창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풍경을 보다가 드라마 한 컷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어쩌면 매번 똑같을 수 없는 액션을 반복하는지에 감탄하고 만다.

 주인공에게 집중되고 있는 카메라 등 뒤로 잠시 스쳐가는 풍경이 되기 위해 누구는 저만치 구석에서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고, 누구는 두툼한 서류봉투와 서류가방을 들고 주인공에게 달려가며 소리를 지른다. 이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를 위해 저만치 보이지 않는 코너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U턴 시켜주는 사람이 있고, 이름 없는 누구는 화장품을 들고 흐트러진 배우의 머리를 매만지고, 이들의 지극정성이 완성된 아름다운 씬으로 관객을 찾아가리라.

 여기저기서 6.13지방선거를 위한 경선과 결과를 가지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가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난 충청의 민심일 것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과 국민 모두의 절절한 함성이 만들어낸 오늘의 대한민국에 세계가 놀란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이끌어 낸 문재인 정부에서 어쩌면 이상적인 세상을 꿈꿔온 모든 이들에게 참담함을 던진 한 사건이 세상을 수렁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닐까.

 충청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던 한 사람의 일탈은 어쩌면 그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소시민의 가슴을 탱자나무 가시로 멍들게 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혼돈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 속에서 고뇌하며 경제의 만성적인 침체와 부조리한 사회체제가 던져주는 피로감, 정체성의 흔들림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강한 의지 덕일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빅토르 에밀 프랑클의 말을 빌리면, 고뇌하는 인간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하루에 한 컵만 배급되는 물을 받아서 반만 마시고, 나머지로 몸을 씻고 유리로 면도를 하면서 인간이기를 고집했다. 병약해진 사람들이 가스실로 보내질 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는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고,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이론을 만든 의사가 되었다.

 인생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희망도 필요하고 절망도 필요한 것 아닌가. 고뇌하는 삶은 절대로 고독하지 않다.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요구받았다. 그것은 개인의 개성도, 내면의 자유도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는 위협 속에서 굴복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자유와 존엄마저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로 전락할 것인가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고뇌 속에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고 하신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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