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 변호사

[오원근 변호사]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한 사건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삼성이 노조 와해를 기획·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자료들이 나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대한민국 제1의 기업'이라는 삼성에게 커다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6,000여건에 달하는 이 문건들에는 사측이 노조원에게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검토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3년 7월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노조의 출범 즈음 작성된 문건에는 노조 출범에 대한 '단계별 대응 방안'이 적혀 있는데, 회유나 압박을 통해 명예퇴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개별 노조원에게 어떤 방안을 적용할지는 노조 가담 정도 외에 가족들의 신상 정보와 경제 형편까지 두루 고려됐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사측에 협조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 일반 노조가 공개한 '2002년 임금, 노사 추진 전략' 문건에는 'MJ 인력 제로화 전략 수립'이 최우선 과제로 적혀 있는데, MJ는 삼성이 노조를 설립할 만한 문제 사원을 표현하던 말이라고 한다. MJ는 '문제'의 영문 이니셜이다. 이 MJ 표현은 2013년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도 나타났고, 또 최근 검찰이 분석 중인 문건에도 들어 있다고 하는데, 노조 활동을 문제시한 표현이 20년간 뿌리 깊게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막강한 자본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헌법에서도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탄압 받아 왔다. 특히, 1998년 IMF외환위기에 따른 노동자의 대량 해고 사태로 노동조합은 크게 위축되었고, 비정규직과 실업 등으로 노조 가입률도 낮은 수준으로 정체되었다. 2016년 노조가입률은 10.3%로 1989년 19.8%의 절반 수준이다. OECD 평균은 29.1%다.

 이번 삼성의 노조 와해 문건 사건은 '자본의 노동에 대한 무시 내지 경멸'을 드러내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반응은 뜨겁지 않은 것 같다. 민주언론시민연합 2018. 4. 10.자 보도에 따르면, 한겨레신문에서 지난 2일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후 지난 8일까지, JTBC가 10건으로 KBS, MBC, SBS 지상파 3사를 합한 8건보다 많았으며, TV조선, MBN, 채널A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철저히 외면했다. 주요 일간지의 경우, 한겨레가 7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가 각각 4건, 3건을 보도한 반면, 동아, 중앙일보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조선일보가 2건 보도하긴 하였으나, 그 논조는 삼성에 대한 검찰의 계속된 수사로 삼성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언론을 대표한다는 주요 언론들이 이 사건을 철저히 외면하고 오히려 본말을 전도해서 보도하는 것은 자본권력 앞에서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시민들은 이 사건 수사의 추이는 물론 언론의 보도행태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