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원재 교수팀 등 공동연구
F1 44년 간 사고 데이터 분석 결과

▲ 이원재 KAIST 교수

[대전=충청일보 이한영기자] 살인, 폭력 등 특정 상대를 향한 거대한 증오 등은 비합리적이고 우발적인 감정이 기반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통 사회적 관계 사이의 갈등은 지위나 경제적 능력 등에 차이가 있는 다른 집단 간에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갈등을 분석해본 결과 그 원인에도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규칙이 있고, 특히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이 비슷할수록 이들 사이에서 폭력적이고 파국에 가까운 갈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KAIST(총장 신성철)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 연구팀은 45년간의 포뮬러 원 (Formula One, 이하 F1) 자동차 경주에서 발생한 사고 데이터를 통해 사회적 행위자들 간의 지위나 정체성이 비슷할수록 폭력, 갈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짐을 밝혀냈으며, 사람들 간 나이가 비슷하고 실력이 우수할수록, 날씨가 좋을수록 더 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는 사용자와 노동자, 권력자와 시민처럼 권력과 정체성이 다른 집단 사이의 갈등이 떠오르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갈등으로 범위를 좁히면 오히려 사회적 위치가 비슷한 관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자주 발생한다.

나와 비슷한 상대방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이 발생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게 되며,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는 원리다.

그동안의 연구가 제한된 인간 집단이나 동물 실험을 대상으로 한 뇌 과학이나 생화학적 지표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한계를 가짐에 따라, 연구팀은 F1 경기를 통해 형성된 인간 행동 데이터를 이용해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 유사도를 수치화했다.

45년간 이뤄진 F1 경기에 출전했던 355명 사이에 발생한 506회의 충돌 사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팀은 랭킹과 같은 일차적 정체성인 객관적 성과 지표를 통제한 뒤 선수끼리의 우열, 즉 천적 관계 등에 대한 개별적 우열 관계를 토대로 선수별, 시즌별 등으로 프로파일을 구성한 결과, 이를 통해 선수 간 프로파일이 비슷할수록(structurally equivalent) 서로 충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서로간의 승, 패가 비슷해 경쟁관계에서 우위가 구분이 안 되면 본인이 모호해진다고 느끼고, 이때 다른 사람에게는 져도 나와 비슷한 상대에게는 반드시 이겨서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랭킹 1, 2위끼리는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어 이런 조건을 사전에 전부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설은 유효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사회 현상과 F1의 관계에 대해 "회사나 조직에서의 경쟁관계나 우위는 데이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스포츠는 종속변수로 삼는 선수의 성과가 굉장히 객관적으로 기록된다"며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가지고 어떠한 구조적 위치에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 기본적 모델인데 F1 데이터는 그런 면에서 매우 객관적인 수치 기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팀의 결과는 경쟁이 일상화된 시장이나 조직에도 적용 가능해 조직 내에서 극한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조건을 밝혀냄으로써 갈등으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한 제도 및 체계의 설계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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