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꽃 진 자리에서 뒤를 돌아본다. 어! 하다 보니 꽃이 피고 지고 여름이오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들녘을 바라다보면 황금빛이다. 그리곤 잠시 후, 그 자리로 하얗게 눈이 내린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다는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런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이미 멀리 와 있다. 그조차, 이제는 모두 희미하게 바래져 가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옹알이를 시작으로 엄마를 알아가고 아빠를, 형제를, 그리고 사회생활을 통해 친구, 연인, 직장동료 및 선, 후배, 이웃과의 연결고리로 살아간다. 거미줄 같은 관계 속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희로애락을 겪으며 각자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 길에서 우리는 사랑을 알아가고 그 또한 오래도록 지속되기가 어렵다는 점도 배운다.

 가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걷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천천히 가는 듯한데, 어느새 저만치 앞서있다. 바람에 한잎 두잎 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세월을 헤아려본다. 먼 하늘로 구름 한 점들이 모였다가 서서히 흩어졌다. 바람도 휑하니 지나간다. 캄캄한 땅속에서 이제 막 솟아나 포릇포릇해진 여린 풀잎들이 바람결에 휘둘린다. 그러면서 세상으로부터 거듭나 강인한 풀잎으로 자라나겠지. 오늘 보이는 저 봄 하늘은 참 공허하다. 공허함은 사랑결핍이 아닐까 필자는 추측해본다.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에 길들여진 속성 탓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받는 것보다 퍼주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날아 갈 것 같은 쾌감이 든다.

 우리는 제일 먼저 부모님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자라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사랑의 형태를 알아간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도 알아간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이유와 조건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때론 그런 것으로 하여금 지속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을 두고 수학공식 같은 정답은 없다. 어릴 때부터 인성과 인간적인 행동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의 삶이 더 풍족해지지 않을까!

 꽃 지는 봄날에 어디선가 포르르 날아 온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쪼로롱 쪼로롱 짝을 찾는지, 목청을 돋운다. 잠시 후 두 마리가 난리법석이다. 포로롱 포로롱 날아다니며 어쩔 줄 모른다. 저렇게 좋을까! 인간도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랑이라는, 형체 없는 대상을 찾아 길을 떠나 볼까나! 꽃 지는 이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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