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Le sixieme sommeil>(2015)에서 28세 의대생 자크 클라인은 신경생리학자인 어머니 카롤린 클라인이 미완으로 남긴 수면 연구를 이어받아 수면의 신비를 파헤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꿈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간대의 자아의 의식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6번째 단계 수면에 이르는데 성공한다.

 6번째 수면은 1937년에 신경 생리학자인 나다니엘 클라이트먼이 발견한 90분 주기의 수면의 4단계에 이어 1959년 미셸 주베가 클라이트먼의 연구를 보완해 소개한 다섯 번째 단계인 역설수면 단계 다음 단계의 수면 상태로, 5번째 단계 수면상태까지는 실재하는 이론이라면 6번째는 베르베르가 상상해서 착안한 것이다.

 <잠>에서 자크 클라인이 실험에 성공한 6단계 수면상태에서는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되지만 인간의 뇌 활동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6번째 수면단계에서 자크 클라인은 시간대를 넘나들며 다른 나이의 자아와 만나게 된다. 자크는 "우리를 멀리 데려가는 길 끝에 이르러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삶의 완숙기에 젊음의 문이 있다."라고 표현하는데, 베르베르는 이러한 의식의 순환을 '클라인의 병' 원리를 이용해서 가정하고 있다.

 뫼비우스 띠의 3차원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클라인의 병은 유리항아리의 목 부분을 구부려 항아리 옆구리를 관통하게 넣은 뒤 목 부분의 끝을 병 바닥으로 나오게 해서 입구를 벌려 만든다. 이때 병의 안은 바깥으로 연결되고 바깥은 안으로 이어져 무한히 순환하는 구조가 된다.

 이 소설은 "꿈을 제어하거나 꿈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20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무슨 말을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물론 꿈속에서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만나는 것은 소설이 설정한 허구이지만 그 질문 자체는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20년 전의 나를 꿈에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20년 전으로 가는 길(?)에 가능하다면 먼저 2년 여 전 나의 의식을 찾아가 아빠께 갑작스럽게 병이 번지기 전에 얼른 치료를 받도록 말씀드리라고 하겠다. 만일 아무리해도 병을 막을 수 없다면 아빠 얼굴을 더 보고, 아빠 손을 더 만져보고 그렇게 생전의 아빠 모습을 더 깊이 간직해두라고 하겠다. 그러고 나서 더 지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후회스러운 순간들 전에 나에게 경고해주고 싶다.

 과거의 나와 만나는 장면을 상상하다보니 문득 과거의 나에게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20년 전에 비하면 지금 젊음은 많이 퇴색했지만 아마도 그동안 받은 은혜에 감사의 기도를 올릴 것 같다.

 상상하는 김에 더 해서 먼 훗날의 나와 꿈에서 만나서 미래의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대신 내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먼 훗날의 나를 가꾸어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많은 부분 지금 나에게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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