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재생·부활·부흥의 뜻이 담겨있는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만들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으로 확산되면서 문예부흥의 시금석이 되었고 지구촌의 문화운동이자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신플라톤학파의 영향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서 힌트를 얻은 브루넬레스키의 두오모성당과 같은 세계적인 건축, 미술을 비롯해 음악, 과학 등 수많은 예술장르를 탄생시키고 시공을 초월한 지구촌 문화지형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의 성공은 옛 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되 융합적 사고와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시키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대의 요청도 있어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창의적인 인물들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청주시도 피렌체 못지않은 르네상스 성지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청주에서 만들어졌다. 이미 1200년대에 증도가자와 상정예문이라는 금속활자본을 찍어낸 기록이 있지만 전하지 않는다. 오직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인류 미디어 왕국이요, 당대 최고의 문화 선진지이며, 창조적 인재가 많았던 것이다.

 한글 역시 세종대왕이 초정리 행궁에서 완성했다. 지금으로부터 570년 전의 일이다. 세종대왕 중국에 사로잡히지 않는 올곧은 생각과 백성들을 문맹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실용정신으로 한글을 만들었다. 주자소를 설치하여 과학문명인 인쇄활자와 출판사업을 장려하였고 박연에게는 아약을 정리하고 악기를 제작토록 했으며 동양 최초로 유량악보를 탄생시켰다.

 단양과 계룡산 등지에는 고려청자의 뒤를 이어 조선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고 대중화에 힘썼는데 그 당시 전국에는 자기소 139개와 도기소 186개의 가마터가 있었다. 과학기술 발전과 예술지원은 물론이고 행정, 복지, 의료, 외교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121일간 초정행궁에서는 안질 등의 치료 외에도 한글을 체계적으로 다듬는 일을 했으며 늦둥이 세자와 대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박연과 함께 조선의 악기인 편경을 개발했고, 청주향교에 책을 하사하는 등의 학문 장려에 힘썼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를 통해 조세법을 개정키로 하고 이곳에서 시범 도입했으며 극심한 가뭄이 오지 신하들을 고향으로 보내 가뭄극복에 힘쓰게 했다. 가뭄의 원인이 높새바람(푄현상)인 것을 확인하고 다양한 연구와 기술 개발에 힘썼다.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서울에서 초정으로 내려오는데 꼬박 5일이 걸렸다. 어가를 크게 하지 않았으며, 어가행차 중에 농작물이 훼손되면 곡식으로 보상토록 했다. 인근 마을의 노인들을 초청해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양로연을 베풀었다. 경호실장이 급사하자 친히 장례를 올렸으며 독서휴가를 보내는 등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다.

 이곳에서 당신의 통치철학인 인본, 지식, 시스템을 실천한 것이다. 인본은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고 차별 없는 인재등용과 백성의 안위를 위해 힘쓰는 것을 말한다. 지식은 학문을 장려하고 끝없는 연구와 탐구정신을 일컬으며 시스템은 토론문화와 다수결의 원칙, 그리고 체계적인 점검과 결정적인 순간에는 독자적인 판단이라는 당신만의 철학을 실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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