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팝콘 터지듯 봄을 연 산수유, 벚꽃 진자리에 작은 이파리들이 연둣빛 물감을 풀어내는 4월이다. 몽글몽글 산 빛이 파르름히 물들어 가고 있다. 그 4월을 닮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톡톡 튄다. 내 묵은 관념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이다.

 세상이, 아니 학교가 참 많이 달라졌다. 교정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학생들의 수업 형태가 달라졌다. 특히 선생님의 사고가 놀란 만큼 앞서 달린다. 교사와 학생 간 거리감이 없어졌다. 자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교복을 갖춰 입었어도 자유가 엿보인다. 40여 년 세월의 강을 훌쩍 건너 새로 들어선 고등학교 수업현장에서 맞닥뜨린 느낌이다.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풋풋하고 신선했다. 변하지 않는 건 어쩌면 고정관념의 틀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는 세상으로 향한 문을 걸어 닫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책과 시름해야 한다'는….

 지난해 진천 교육발전공동체 일로 우연히 만난 한 교장님으로부터 인문학 강의 요청을 받았다. 고등학생을 가르쳐 본 일이 없는 입장에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역인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는 말씀이 마음을 끌었다. 이른바 '서전아카데미'다. '나를 찾고 세상과 소통한다'는 주제로 시작해서 올해는 '마을교사와 함께 하는 서전아카데미'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는 정치, 경제, 통일, 노동 인권을 비롯하여 환경, 문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관심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듣는 수업이다. 나는 '문학으로 만나는 생거진천 역사 인물' 프로그램을 갖고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참여하면서 새삼 깨우침이 크다.

 서전고등학교가 어떤 학교인가. 독립운동가요 신·구학문에 능통한 학자 보재 이상설 선생이 용정에 세웠던 '서전서숙'(瑞甸書塾)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이름한 곳 아닌가. 교육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협력하여 보재 선생의 고향, 덕산 혁신도시에 새로 세운 학교다. 지역에서는 선생의 이름에 걸맞은 세계적인 명문고, 명품학교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명문고란 인류대학을 얼마나 보내느냐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간판에 목을 맸다. 아이가 진정 하고 싶은 것, 취미나 특기는 뒷전이다. 인성이야 어찌되었든 이름 있는 대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만으로도 '자식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기 위해 부모는 자식을 상전으로 받든다. 공부하는 방문 앞에서 부모는 가만가만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자식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다. 자연스럽게 자식은 안하무인이 됐다. 병폐다. 진정한 명문고, 명품 인간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공모제에 의해 첫 취임한 한상훈 교장 선생님 포부가 야무지게 깨어 있다. '나를 세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서전인'을 육성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도시 전체가 교육공동체를 이루어 학생과 지역사회가 함께 세계를 향해 미래를 열어가는, 글로벌 리더를 길러내자 손을 내민다. 47년 짧은 생애, 누군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보재 선생의 얼을 잇는 진정한 교육의 산실이 되길 소망하며 교문을 나선다. 밝고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4월의 햇살로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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