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지난 주 필자의 딸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아빠가 바쁘지 않으면 자기 딸(외손녀)을 어린이 집에서 데리고 왔으면 하는 전화였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큰맘 먹고 일찍 귀가를 서둘러 어린이 집 근처로 갔다. 처음 가는 곳이고, 혹시나 늦을까 싶어 여유 있게 간다고 간 것이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여 근처를 서성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여느 집과 비슷하게 필자의 가정도 딸이 근처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나고 또 외식도 적지 않게 하는 편이다. 외손녀는 현재 4살이 되었는데 몇 주 전 필자와 싸운 일이 있었다. 그날도 외식을 함께 하는 날이었는데 필자가 운전하는 차안에서 장난을 치다 위험한 일이 일어날 뻔 했었다. 심하게 야단을 쳤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그치질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 차안에 같이 있던 자기 엄마, 외할머니, 심지어 자기 아빠까지 나서서 혼난 이유를 설명하며 달래는 데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서 드디어 외할아버지인 필자에게 독설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할아버지 집에 가지도 않을 것이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안에 있던 가족 모두가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필자는 몇 가지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영악한 요즘 아이들의 말인 것이다. 그 날은 얄미울 정도로 말을 잘 하는 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둘째는, 필자의 마음을 어린 것에게 들킨 것 같아 멋쩍었고 좀 서운했다. 그동안 예뻐해 주고 사랑스럽게 대할 때마다 잘 따라주는 애기인 줄만 알았는데, 며칠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필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저런 독설을 내뱉는단 말인가?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딸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서둘러 모면하려 했지만 필자에게는 이런저런 생각이 오래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날은 간만의 만남이었다. 사실 어린이집은 필자의 딸을 데리고 다녔던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는 몇 십 년 만에 들르는 것 같았다. 외손녀의 노란 가방을 한손에 들고 한손에는 애기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는다. 애기의 작은 손이 불편할까봐 내 새끼손가락을 쥐어주며 될수록 보폭을 맞추어 함께 걸었다. 참 앙증스런 느낌이 손을 타고 온 몸에 전율이 되어 새롭다. 이 작은 손이 점점 자라서 필자가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됐을 때, 차갑고 거친 손을 다시 잡아주는 따뜻한 큰 손을 상상해 본다.

 애는 애인가 보다. 며칠 전 일은 까맣게 잊은 듯, 오늘 어린이집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재잘 거린다. 그날 사건도 있고 해서 큰맘 먹고 근처 마트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었다.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자기 엄마를 닮았나를 연상해 본다.

 어린이날이 돌아온다. 점점 영악해지는 애들을 힘겹게 키워가는 요즘 젊은 부모들의 교육방식과 필자의 경험을 비교해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특별히 며칠 전 외손녀에게 당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아마도 필자는 너무 큰 학생들만 가르치다 보니 어린이들을 잘 몰라서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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