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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풍이향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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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7  13: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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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수필가] 햇살이 따사롭다. 포근한 바람은 꽃잎을 간지럽힌다. 우두둑 비는 내리고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바들거린다. 그렇게 몇 차례의 꽃샘추위가 지나간다. 어머니는 일주일정도 우리 형제들의 태를 묻은 박처루에 계셨다. 이 십 여 년간 불기운 없던 집이라 이웃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원래부터 한 사립문 안에서 지낸 자매처럼 헝클어진 실타래에서 추억을 끄집어내었다.

 들뜬 어머니는 안부를 여쭐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귀찮을 정도로 새벽부터 수차례 목소리를 들려 주셨다.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이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어머니의 발걸음마다 엊그제 일 같은 추억들이 떠오르면 밤낮이 따로 없었다. 싫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듣는 고향소식에 나도 흥분이 되었다.

 아버지는 동산의 발목쯤에 모셨다. 그곳은 어머니가 옥배미로 농사일을 가시는 길목이다. 어머니는 가파른 언덕을 손으로 짚으며 간신히 올라 봉분의 잡초를 뽑으셨다. 당신의 살아온 날들을 넋두리 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나게 될 그날을 약속하셨다. 그리고는 자식들의 건강하고 좋은 길로만 갈수 있도록 지켜봐 달라고 하셨단다.

 낼모레면 쉰 살이 되는 남동생과 동갑인 집의 부엌 쪽은 빗물이 새어 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눈만 뜨면 그리로 올라가서 쓸고 닦고 정성을 들였지만 윤기를 잃은 집은 광이 나지를 않았다. 어린아이 마냥 떼를 쓰고 당신의 주장만 하신다. 아무도 살지 않을 집을 고쳐 내란다. 멸문이 될 처지에 그 집을 짓고 아들을 낳았다며 당신의 생에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깃든 집이란다.

 달콤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동안 새 각시 쥐 바람 시키듯이 온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돌려가며 초대해 손수 밥상을 차려 주셨다. 쌉싸름한 머위, 새콤달콤한 원추리 무침, 냉이, 달래, 텃밭에서 쓱 베어 온 정구지, 야들야들한 미나리를 무치고 족히 삼년은 묵었음직한 된장에 애쑥을 넣어 보글보글 끓여 내어 밥을 비벼 드시면 보약 같았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정확히 반백년을 살아 낸 그곳에서 매일이 봄 소풍이었단다.

 어머니는 청주로 돌아오셔서도 자식들에게 당신의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신다. 바람이 부는 아침이라서, 비가 내리는 저녁나절이기에, 며칠째 곽 막혔던 후장이 큰일을 해냈다며 소소한 일상을 지척에 자식들에게 전해준다. 목소리만 들어도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고향으로 간 소풍이든 세상으로 온 소풍이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고되고 춥게만 느껴졌던 날들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나 보다. 꽃샘추위가 수없이 지나간 오늘 완연한 봄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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