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바람이 분다. 바람이 한번 흔들고 지날 때마다 꽃잎이 나부낀다. 바람은 예쁜 꽃이나 예쁘지 않은 꽃이나 분별없이 다 흔들어댄다. 바람인줄 알면서도 그 바람에 몸을 내 맡기고 봄날은 간다. 꽃잎도 화려한 봄날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마음을 비우고 순응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바탕 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 뚝 떼고 새 순이 돋아나고 있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 살이 나오듯이 또다시 파릇파릇한 청춘을 꿈꾸고 있다.

 봄 내내 나는 꽃바람이 들어서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서른 즈음에 보았던 꽃들도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하고 반문해보면서 예순의 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꽃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도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는 꽃보다 아름다운 그 무엇들이 아주 오랜 동안 나의 눈을 멀게 했는지 모른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들을 하지만 이봄에는 온통 꽃들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빼앗겨버렸다.

 아름다운 풍광도 혼자 보기 아까울 때가 있다. 무심천에 벚꽃이 만개를 하면 사무실에 커피를 가득 내린다. 꽃구경을 빌미로 지인들을 불러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함께 무심천 꽃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꽃그늘 아래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보지만 얼굴에 가득한 주름들을 감출수가 없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아주 잠깐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사랑 받는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피어 있다면 귀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할 거였다.

 무심천에 벚꽃이 지고나면 그 다음으로 우암산길에 꽃이 핀다. 지름길을 마다하고 먼 길을 돌아 우암산 벚꽃 길로 봄 내내 출퇴근을 했다.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진 벚꽃 길은 날마다 봄의 축제였다.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문득 꽃이 지기 전에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은 좋은사람들을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도 아름다운 꽃길마저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의 삶은 늘 풍요롭고 감사하다. 고단한 일상도 꽃 타령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삶에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겨우내 바깥출입을 못하시던 J선생을 모시고 친구와 꽃구경을 나섰다. 어디서부터 먼저 꽃이 피고 지는지를 잘 아는 나는 친절한 꽃 가이드가 되어서 대청호를 달리고 있었다. 꽃과 호수와 바람이 햇살에 눈이 부시다. 꽃잎은 4월에 내리는 눈이 되어 흩날린다. J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늘 하루 이 봄볕과 꽃바람이 그분에게 보약이 되었으면 싶었다. 꽃이 영원하지 않아서 아름답듯이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삶이 무한하다고 생각하기에 매순간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밤새 봄비가 많이 내렸다. 이제 꽃바람을 잠재워야하는 시간이다. 내 마음속에서도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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