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만우 장애인고용공단 충북지사장

[안만우 장애인고용공단 충북지사장] 캐나다 토론토에는 종업원 모두를 청각장애인으로 채용한 사인(Signs)이라는 상호의 레스토랑이 있다. 이 레스토랑은 손님이 음식을 주문할 때 청각장애인 종업원에게 수화로 주문할 수 있도록 메뉴판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간단한 수화를 배울 수도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제품을 만들고 있는 회사가 있다. 지난 대선 때 이른바 '문재인 구두'로 유명세를 탄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AGIO)의 제조사 '구두 만드는 풍경'이다. 이 회사는 2010년부터 수제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라는 편견과 경기악화에 따른 경영난으로 2013년 문을 닫은 뒤 지난해 대선 이후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올해 다시 재가동을 시작했다.

 사인(Signs)과 '구두 만드는 풍경'은 공통점이 있다. 종업원을 모두 청각장애인으로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다는 점과 회사를 오픈하고 정해놓은 직무에 맞는 장애인을 고용한 것이 아닌, 장애인을 고용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에게 맞는 직무를 찾은 작은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조차 잘되지 않는 장애인을 고용해 기업을 운영하고 이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에 집중한 덕에 작은 기업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부터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선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민간기업은 2.9%를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해야 하는데, 1000명 이상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24%로 의무고용률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반면 100인에서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3.04%로 의무고용률을 상회한다. 장애인고용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 일본의 경우도 우리나라처럼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 나라들은 대기업일수록 장애인 고용률이 높다. 대기업에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 고용대책 중장기 로드맵인 '5개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2018~2022)이 공개됐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5개년 기본계획은 대기업이 고용 의무를 확실하게 이행하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는 정말 대기업이 나서야 할 때이다. 만족할 만한 임금, 생산적이고 적합하게 설계된 업무, 적절한 근로시간과 고용 보장, 쾌적하고 안전한 근무환경이 제공되는 좋은 일자리가 장애인에게도 필요하다. 고용 부담금이 상승된다는 정책이 발표된 지금 대기업에게도 장애인 고용은 무시할 수 없는 현안이다. 혹시 장애인에게 제공할 적당한 직무를 찾기 힘든 대기업이 있다면 앞에서 소개한 작은 기업들을 참고했으면 한다. 직무에 맞는 장애인을 고용하려 하지 말고, 먼저 장애인을 고용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에게 맞는 직무를 찾으면 된다. 그들의 '장애'보다 '강점'에 집중한다면 장애인들이 일할 직무는 어디에든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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