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며칠 전에 어떤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고부관계'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여성이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지 못해 시댁과 마찰을 겪는 내용이었다. 그 기대치가 너무 높은 나머지 유산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시댁은 무언의 압박을 주며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심지어 며느리는 현재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감을 오롯이 혼자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필자가 실제로 만나본 태아 중에도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언청이가 생긴 산모를 상담해보면 임신 초기에 큰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태아와 산모가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핵심감정'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실제로 심리상담에서 상담기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신경학자인 프로이드(Freud)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산모가 가졌던 정서가 태아의 뱃속에 영향을 주어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점은 산모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나의 감정이 나의 아이의 평생을 지탱할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살펴본 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을 보면, 버릇을 잘못들인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지금 내 몸에 있는 아이는 나의 감정을 다 알고 있으며, 모두 대물림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단지 엄마라는 존재가 혼자 마인드컨트롤만 잘하면 되는 문제일까?

 모두(冒頭)에서 소개한 프로그램에서 필자가 더 심각하게 보았던 점은 남편이라는 존재였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방관하고 있었다. 실제 영국 산부인과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산모의 고혈압으로 태아가 느끼는 악영향을 '1'로 보면, 남편과 아내의 불협화음은 이것의 6배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참으로 출산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신경써야하는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다.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유는 씨를 잘 뿌리고 추수를 하는 농부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내가 열심히 잘 키운 만큼 좋은 알곡을 추수하는 상호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산모와 태아는 이것을 뛰어넘는 특별한 관계이기에 필자는 이들의 관계가 '호혜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호혜(互惠)라는 뜻은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이다. 분명히 내가 노력하고 아이에게 좋은 감정을 준만큼 그 아이가 나에게 훗날 추수보다 더 큰 특별한 혜택과 보람을 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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