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씨앗들이 땅속에서 싹을 밀어 올리는 소리 /"영차 영차"힘들어 빨개진 얼굴 환한 봄꽃 되어 핀다고 했지. /그래 운동회 날, 편 모으는 소리도 "영차 영차"로 한 거야 /눈감고 있어도 꽃 대궁 키우는 노래 "영차 영차" /장난치다 엎지른 물감 햇살 빈터에서 받은 하늘 그린다 했지 /동네 자치기, 공기놀이, 똥침 놓기도 재미있지 /해가 저물면 어떠니 하얀 깡통차기하면 되지 /달이 굴러 어둡지도 않단다. /그게 바로 동심이란 거야. 얘들아 팝콘 냄비 뒹구는 옥수수 알처럼 꿈을 튀겨보렴 /그게 바로 "영차 영차"란 거야 너희들이 그려갈 세상이란 거야 /

 필자의 동시 '영차 영차'다. 5월은 어린이·어버이·스승의 날까지 망라한 은혜로운 달이다. 그래서 일까. 부둥켜 소박한 재잘거림과 웃음꽃으로 하늘마저 흔들거린다. 어렸을 적 또래들과 둘러앉아 보리짚대를 지펴 햇감자 구워먹던 동심 자욱한 그리움,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다듬질이 덜 돼 있지만 동심은 맑고 싱그러워 언제나 푸성귀 아닌가?

 소년시절, 딱지와 구슬치기는 유일한 문화였다. 하교 후 판이 시작되면 땅거미 정도는 예사로 넘겼다.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 흙 때 묻은 나부랭이지만 횡재한 날엔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니 부자 부럽지 않았다. 구슬치기 역시 유리구슬 틈으로 쇠구슬이 등장하는 바람에 방앗간 집 아들을 당할 수 없었다. 중학교 진학을 하니 재산처럼 모았던 딱지와 구슬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어서 애써 모은 걸 버려야 하는 혼란을 겪었다. 이렇듯 평생 추억으로 꼽힐 분위기라면 친구를 따돌리고 빈 집처럼 흉물 되어 주저앉을 리 없다. 사람도 세상도 기운이 돌아야 지탱한다. 끄덕여줄수록 훤칠하게 자란다. '누구 때문에' 아닌 '누구 덕분에'여야 한다. 순도 높은 관계일수록 연결 끈은 단단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 되던 봄, 새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대에 찼다. 맞장구를 쳐줄 때 소리 결 고운 거문고처럼 '우리·함께·같이·어울려·더불어'로 인성을 다듬어 주셨다. 그 설렘, 그 행복, 그 훈훈함 속에 공부란 쉽고도 재미있는 놀이란 걸 알게 돼 소박한 운명의 씨앗을 파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빼닮은 교사'의 꿈을 키우며 은사님께서 다니신 배움터를 좇아 교사자격증을 받았다. 새내기로 교단에 올라 선생님 흉내를 시작했으나 마음이 앞설 뿐, 가르침은 예상 밖 실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론처럼 먹혀들지 않아 번민만 짙어갈 때 '타성의 답습을 깨어날 사도야 말로 참된 자기를 가꾸는 길'이라며 기다림의 미학을 주문하셨다. 같은 오류·실수를 용인하는 교육현장의 고루한 폄훼가 비칠 때마다 은사님 너른 품이 그리운 걸 어쩌랴. 삼강오륜을 쑥 빼고라도 최소한 어른 아이 하나 구별 못하는 세대를 숨어서 지켜보며 왜 눈시울이 시큼해질까. "앉아서 햇볕을 기다리지 않고 길목에 지켜 서서라도 끌어오라"며 자기 주도적 삶을 살갑게 챙겨주신 스승님 가르침, 대 잇기의 청출어람이 부끄러워 다시 애벌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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