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오월이다.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푸른 하늘색과 하얀 꽃송이와 초록의 잎들이, 오월의 훈풍에 더욱 빛을 발한다. 오월은 싱그럽다. 생동감이 넘친다. 잎과 꽃망울들이 새로 돋아나, 움쑥 움쑥 자라고 꽃을 피우고, 바람에 나부끼며 온 끼를 발산하는 계절이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들, 또한 지난 추억들이 잔잔히 떠오른다. 이순의 고갯마루에서서 돌아보는 시간들은 이미 옛일이 되었지만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어 낸 시간들이다.

 들녘에서 거친 비바람과 모진 시간들을 견디던 이름 모르는 키 낮은 풀꽃들과 초목들, 화단에서 보호 받으며 곱고 아름답게 자라는 화초들도 오월의 햇살 아래서 아름아름 제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다. 말과 행동에서 자신만의 빛과 향기를 세상으로 드러낸다.

 오월의 향기를 품고자 동창들과 여행을 갔다가 서로의 대화 속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대화다. 서로 주고받는 말의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감정은 달라진다. 물론 받아들이는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면 별 문제야 없겠지만, 너무 예민하게 받아 들였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이들의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것은 정감 있게 오고가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들이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 하느냐에 따라 동지가 될 수도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하루였다.

 어떤 상황이든 거친 말을 그대로 하거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툭툭 던지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모처럼 동창들과 떠난 여행길이 오히려 마음의 거리감을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잊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순간순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말이 생각난다. '금속은 소리로 그 재질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든 자신만의 독특한 빛과 향기를 알아주고 누군가 그 이름을 먼저 불러준다면 아마도 그에게 느껴진 특별한 감정은 오래도록 지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다. 이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보기 좋으라고 그냥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남의 말은 잘 듣고 자신이 하는 말은 조심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싶다. 말 한마디의 힘을 되새겨보는 여행길이었다. 오월의 향기와 빛을 좇아 오늘도 한줄기 바람이 되어 세상 속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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