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어느덧 오월의 부풀어진 연한 초록빛 세상이 우리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만드는 계절이다. 무안할 정도로 지난날에 맺은 수많은 추억의 찌꺼기는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우리들 마음을 팍팍하고 답답하게 만들던 그 자리에 소중한 씨앗 하나 찾아와 꿈 꽃 한송이 필 것 같은 날들이다.

 30여 년 전 나의 마지막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오월이 아련하게 뇌리를 스쳐간다. 평소 나와 친분이 있던 지인이 운영하는 ○○문학출판사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은 후 글이 뜻대로 써지질 않아 답답함으로 고심하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역작으로 남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소설에 한층 더 심취해 있던 나로서는 그 시절 단순히 내 가슴속에 무엇이라도 가득 담아 와야 할 것 같다는 절박해진 마음에 무작정 서해의 무창포 바다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찾기 위한 수없이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눈물도 흘렸다.

 아직 밤이 덜 밀려온 석양이 붉게 물들 무창포 앞바다를 꿈꾸듯이 바라보며 '무엇인가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살아있음의 생기로 철철 흘러넘치게 하리라.'라고 다짐하면서 한없이 가슴도 뛰었었다. 불현듯 네덜란드 거리의 성악가 마틴 허켄스(Martin Hurkens)의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가 생각난다. 그는 1953년 네덜란드의 쉰벨트에서 태어났다.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일곱 살에 쉰벨트 소년합창단의 멤버가 되었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열 세 살 되던 해에 장학금을 받고 브른숨에 있는 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장학금 지원의 중단으로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성악가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고 가정 형편이 녹록치 못한 그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에르겐 제과회사에 입사하여 35년간 제빵사로 젊음을 바쳐 일했다. 하지만 2009년 쉰일곱 살이 되던 해에 해고되고 말았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10년 그의 막내딸이 자신도 모르게 신청한 네덜란드의 갓 탤런트(Holland's Got Talent)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음반을 출시하게 되었고 세계 여러 곳에서 공연도 하였다. 마침내 그가 어려서부터 꿈꾸어 왔던 성악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언젠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 허켄스는 빵을 만드는 순간에도 항상 노래를 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꿈을 이루기보다는 꿈을 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비록 지금은 내가 원하던 대로 많은 이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군·소 잡지에 나의 글을 발표하면서 그리고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조금이나마 젊은 날의 꿈을 이어간다는 자체가 나 자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몇 년 후 일지는 모르겠지만 직장을 은퇴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내가 좋아하는 진실한 글을 쓰면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마틴 허켄스처럼 앞으로 무슨 노래를 부를까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꿈들이 서려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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