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두 나무가 서로 떨어져 각기 자라다가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된 것을 '연리지'라 이르고 두 나무줄기가 서로 연결되어 한 나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연리목'이라 칭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괴산에 있는 산막이 옛길을 걸었다. 타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걷기에도 무리가 없고 풍광도 좋고 가까이 있어 찾아가기에 부담이 없는 곳이라 좋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무슨 할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이런저런 사유들을 들어내며 쉼 없이 떠들며 걷고 있다. 이순의 고개를 넘나드는 친구들이지만 여전히 소녀들이다. 걷는 일은 두 다리가 하는데 다들 입이 더 바쁘다. 바람결이 좋다. 햇살도 좋다. 초록의 향기가 내 폐부를 통해 전신의 핏줄을 따라 흐른다. 내 안에서 머물고 있는, 세상에서 묻혀 온 모든 분진들을 깨끗하게 헹구어 낼 것 만 같다. 이런 숲속의 세리머니에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었다.

 문득 기이한 나무가 우리의 앞을 가로 막는다. 한그루인지 두 그루 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리고 고사목이다. 그런데 뿌리는 서로 다른데 있고 각자 자란 나무줄기가 서로 붙어있다. 마치 한그루의 나무에서 자란 가지처럼. 서로 각기 자라다가 둘이 하나가되었다.

 인연이었을까!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사유가 있었을까! 둘이 하나가 되어 서있는 모습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한낱 한시에 타고 난 손가락의 크기도 다 다르다며 내 목소리 키우기 바쁘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열정의 여름을 지내고 이제는 가을날에 서 있는 두 노부부의 모습 같기도 하고, 부모자식의 인연 같기도, 아니면 절절했던 연인사이 같기도 하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인연 앞에서, 나는 이렇게 또 다시 주절대고 있다.

 뿌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 두고 각자 자란 나무줄기가 하나가 되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과 벗겨진 생체기에서 서로 다른 진액들이 흘러 섞이고 흐르며 하나가 되기까지 속으로 파고드는 아픔을 어찌 견뎌냈을까! 서로 부대끼며 섞여가는 고통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으리라.

 고사목이 되어서까지 영원히 하나가 된 연리지가 훈육하듯 우리들 앞에 서있다. 부모자식 간, 부부사이, 친구, 연인, 이웃사이 이들 모두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인연인가. 서로 마음으로 보듬고 아우르며 살다보면 둘이 하나가 된 연리지를 보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거리를 지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그들은 내게 '인연'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둘이 하나가 된 연리지의 나뭇가지 사이로 석양이 장엄하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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