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거리가 술렁거렸다. 사람 소리, 악기 소리, 그리고 음악 소리가 들렸다. 배고픈 여행자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하러 가다 말고 행렬과 맞닥뜨렸다. 경쾌한 음악과 밝은 웃음, 환호성이 들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웃고 목말을 탄 아이도 웃었다. 웃음과 음악은 영혼의 으뜸 치료사라 국경도 없다. 예루살렘의 중심가며 서울의 명동이라고 일컫는 벤 예후다 거리에는 지난 15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창립 70주년을 기념한다는 피켓과 현수막의 글씨를 뒤늦게 보았다. 그날은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날이다. 성지를 순례하겠다거나 종교에 대해 신심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고 여행을 위해 몇 나라를 거쳐 도착한 곳이 이스라엘이고 예루살렘이다. 오고 보니 5월 17일부터는 라마단이 시작되고 오순절 기간이기도 했다.

 가는 데마다 관광객이 많고 사람이 많아 아무튼 숙박비, 음식값, 하다못해 생수 한 병도 몹시 비쌌다. 하긴 프랑스 파리에 버금가게 물가가 비싸다는 말을 듣긴 했다. 가자지구의 학살 소식이 들렸다. 벤구리온 공항을 통해 늦은 밤에 텔아비브에 온 날이 사건이 벌어지던 날이고 아침이 돼서 신문을 훑어보다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기사를 보고 오후에는 축하의 환호성을 지르는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보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는 'Trump make Israel great'라고 쓴 현수막이 펄럭였다. 시청 게시판에도 같은 문구의 게시물이 부착되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제치고 예루살렘에 미국 대사관을 개관하고 팔레스타인은 이를 반대하다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죽거나 다쳤다는 것이다.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고 어린아이도 죽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은 유대인이 이곳에 이스라엘을 세우면서부터 지금까지 전쟁과 테러의 땅이 되고 말았다.

 예루살렘에는 이른 아침이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인지, 대포 소리인지 모를 쿵쿵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거리마다 총을 든 경찰과 군인이 보이고 필자 같은 외국인에게는 형식적인 여권 검사를 했지만 가는데 마다 검문소가 앞을 막았다. 소리 높여 사랑을 말한 예수가 태어난 곳이 이토록 심하게 경계를 해야 하는 곳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더구나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각자 자기의 성지임을 주장 하는데 종교의 근본 목적인 인류 평화와 사랑은 흔들리고 있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대와 기독교 단체가 주최한 구국기도회에는 왜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유대교 신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단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일반인이 볼 때도 종교적 논리가 분명하게 다르다.

 필자도 유대인은 전쟁이 벌어지면 귀국하고 아랍인은 도망가더라고 은근한 강요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이다. 사진 속의 가자지구 여성 시위자는 포화 속에서 국기를 흔들고 있다. 하마스가 아이와 여성을 장벽으로 가까이 가도록 지시했다는데 필자가 받았던 교육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도 분단국가이고 휴전국가이다. 그래서 깜짝, 아니 일상처럼 만났다는 남북 정상의 모습이 곱다. 부디, 우리 땅에는 평화만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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