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인간이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태어난 존재는 그림자가 따르듯이 반드시 죽음이 찾아들고 생겨난 것은 멸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다. 옛 성현들은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일"로 받아들였다 한다. 옷을 오래 입어 낡았으니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럼 어떤 옷으로 갈아입고 어떤 차로 갈아타게 되는 것일까? 그 결정권은 나 스스로 지은 바, 업이 쥐고 있다. 살아생전에 내가 지은 행위, 내가 추구한 바를 좇아 인연 처를 구하는 것이다.

 해인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하던 학인 스님들이 가을 수확 전에 잣나무 숲으로 잣을 따러 갔다. 그런데 그만 한 스님이 잣을 따다가 나무 밑으로 떨어져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은 것을 알지 못했다. 일순 어머니가 생각났고 그 순간 이미 속가의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배고픈 채로 죽었기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길쌈을 하던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누나가 갑자기 펄쩍 뛰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다.

 면목 없이 한쪽 구석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는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네 이놈 객귀야 어서 먹고 물러가라." 그는 놀라 뛰어나오며 투덜 됐다. "에잇, 빌어먹을 집! 내 생전에 다시 찾아오나 봐라! 나도 참 별일이지. 중 된 몸으로 집에는 뭣 하러 왔나. 가자! 나의 진짜 집 해인사로"하며 가고 있는데 길 옆 꽃밭에서 청춘 남녀가 풍악을 울리며 놀고 있었다.

 그때 한 젊은 여인이 다가와 "스님 놀다가세요."라고 유혹했다. "중이 어찌 이런 곳에서 놀 수 있소?"하고 사양하며 여인의 욕설을 뒤로 한 채 발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아 잡은 노루를 구워 먹으며 권했다. 그들도 뿌리치고 절에 도착하니 재가 있는지 염불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나는 열반당 간병실로 가니 자기와 꼭 닮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를 보고 발로 툭 차며 어서 일어나 거라 하는 순간 그는 다시 이 세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슬피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왜 여기서 울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어머니는 "네가 산에서 잣을 따다 떨어져 죽지 않았느냐? 지금 장례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다. 그가 다시 "어제 누나가 아프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하여 바가지에 된장을 풀어 버렸더니 살아나더라."했다.

 그가 무인들이 노루고기를 먹던 장소에 가봤으나 그들의 자취는 없고 큰 벌집에 꿀을 따 온 벌들이 열심히 드나들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여인이 붙들던 곳으로 가보니 굵직한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고 옆에 비단 개구리들이 모여 울고 있었다. "휴! 내가 만일 청춘남녀나 무사의 유혹에 빠졌다면 분명 개구리, 뱀, 벌 중 하나로 태어났을 것이 아닌가?"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해인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 이야기는 영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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