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사철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플라스틱 통을 재활용한 화분이다. 주차장의 경계로 보초를 서던 그들은 지난 겨울의 지독한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영양제를 살짝 뿌리고 물을 주어도 깨어나지 못했다. 다시 나무를 심어야지 싶었는데 지나는 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산이 되었다. 와중에 민들레가 자리를 잡고 주인행세를 한다. 잎사귀를 내밀더니 어느새 노랗게 꽃을 피우고 하얀 홀씨를 날리기 시작한다.

 그곳을 비집고 들어선 민들레에게 뒤질세라 쑥쑥 자라던 잎사귀 사이로 가늘게 뻗어 나가는 꽃대들이 있었다. 씀바귀려니 했더니 그의 이름은 고들빼기란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듯 하늘 높이 올라가는 그의 몸은 바늘처럼 가늘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한들거리고 작은 얼굴로 해를 향해 먼데 보기를 하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여 오가는 길에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화분에 더부살이를 시작하지 않고 들녘에 자리를 잡았다면 꽃을 피우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부지런한 아낙이 앳된 그를 뿌리 채 뽑아 가족의 입맛을 돋우겠다며 새콤달콤하게 무쳐 밥상에 올렸을 것이다. 솜씨 좋은 안노인의 눈에 띄면 가차 없이 뽑혀 소금물에 사나흘은 담겨야 했을 터이다. 생이 다하여 영혼은 간데없이 육신만이 쌉싸름한 김치로 재탄생하여 명예로이 인삼김치로 불리기도 한다. 만병통치약처럼 좋은 것이나 몸이 찬 사람은 젓가락질을 피하라 하니 그나마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가 보다.

 여린 잎으로 겉절이를 하여 밥상에 올리면 할머니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맛나다 하시며 드셨었다. 얼떨결에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는 삼키지 못하고 뱉어 냈다. 귀한 보약을 뱉는다며 야단을 하시는 할머니가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졌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쌉싸름한 맛이 친근하다. 쓴맛 그 자체만으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줄 뿐만 아니라 오물거리다 보면 달큰하기까지 하다. 그 달큰함은 정갈한 어머니의 장독대 맨 뒷줄에 서 있던 항아리에서 떠낸 맛처럼 깊다. 어릴 적 소꿉친구를 중년이 되어 만났을 때의 맛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나물이 되거나 김치가 되지 못하였어도 꽃으로 피어나 그리운 추억 한 페이지 떠오르게 한다면 그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이다. 달거나 시고 감칠맛으로 사람의 혀를 현혹하여도 쓴맛이 없다면 그 어느 맛도 돋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고된 시간이 지나가야지만 달큰한 맛이 배가된다. 무르익은 봄, 척박한 땅에서 노랗게 하늘거리는 고들빼기 꽃을 보며 숙성된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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