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마음이 고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글이 한 줄도 써지지 않는다. 마음대로 붓이 가질 않고 얼룩덜룩 뒤엉키고 섞인 물감이 내 마음 그대로 그려져 있다. 며칠 전에 흠씬 내린 비로 봄바람도 잠재워져졌는데 또 무슨 바람의 눈이 마음속에서 꿈틀 거리는 건지 모르겠다. 한바탕 화려한 파티가 끝난 다음에 허무함 같은 봄날의 후유증이다. 그래! 다시 사랑을 시작해보자.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치열한 노력의 몰두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하여 잘 알아야한다. 노력 없이 그 사랑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동안의 학습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한다. 그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애증의 시간이 지나가면 또 권태로워질까!

 이제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으면서 오늘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놈들 몇 개를 간택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행여나 여린 잎이 다치기라도 할까 염려가 되어서 신주단지 모시듯 품에 안고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은 듯이 행복하고 즐거운 발걸음이다. 베란다 화분 사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우리 집으로 처음 데려온 손님이니 물이라도 한 모금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최소한 열흘 동안은 절대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다육이 꽃집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참는다. 다육이 화분은 꽃으로도 향기로도 아무런 유혹을 할 줄도 모른다. 말없이 무던한 사람 같은 다육이 식물과 다시 사랑이 시작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온통 그 생각뿐이다. 말수가 많지 않던 어떤 이에게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다육이 식물의 묘한 매력이 꼭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을 서성거리듯이 꿀벌 드나들듯 다육이 화원을 들락거린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이름도 다 모르는 놈들을 주섬주섬 데려온다. 정에 이끌려 마구 입양해오는 철없는 엄마 같다. 목이 마르다고 애원을 하는 듯 느껴져도 그때마다 물을 듬뿍 줘서도 안 된다. 괜한 걱정이다. 넘치는 사랑은 병이된다. 갈급할수록 더 잘 자란다. 넘치게 주기만 하는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났던가! 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육이 식물에게 배운다.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검정포트에 담겨져 있던 다육이는 나를 만나면서 다시 환생을 한다. 고풍스런 토기에 옮겨 심어주면 단돈 몇 천 원짜리였던 다육이는 신분이 상승된다. 귀티가 흐르면서 몸값이 달라진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어느 그릇에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서 격이 달라진다. 더 데려오고 싶은 것들이 눈에 밟혀서 나의 발길은 수시로 그리로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가는 설렘이다. 그 사랑이 어디로 향하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행복한 중독이다. 허기가 질 때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오지만 사랑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을 때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사랑도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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