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대야에 한 가득이다. 안면도에서 시집온 바지락이다. 바닷물에 담겨 온 그들은 멀미라도 하는지 몸을 가누지 못한다. 혀까지 쑤욱 내밀었다. 가슴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도 토해내고 작은 미련조차 뱉어 내었다. 안쓰러움도 없이 박박 문지르고 모래가 가라앉은 물을 버리기를 반복하여 냄비에 담았다. 뚜껑을 열어 놓은 채 가스 불을 중간으로 맞추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일이다. 바지락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또 보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냄비 앞을 떠나지 못한다. 시각으로 온 바다가 후각으로 그리고 미각으로 내게 들어온다.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번은 혼자되신 대갈장군 아주머니가 마을에 들어섰다. 머리에 인 함지박에는 염장 했거나 반 건조된 갯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맘때는 바지락도 주인공이 되었다. 어머니는 곡식 한 되박을 주고 바꾸어 작은 가마솥에 삶아주었다. 그 국물로 소리쟁이나 가동차국을 끓였다. 된장을 한 숟가락 풀으면 된장국이 되고 부추를 잘게 썰거나 미역을 불려 넣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바지락 껍질을 까서 젓갈을 담기도 하고 전을 부쳐주기도 했었다. 젓갈은 청양고추와 양파를 잘게 썰어 넣고 마늘을 다져 넣었다. 입맛 잃은 한여름에도 맨밥에 물 말아서 한 두알 얹어 먹으면 입맛이 돌아왔었다. 그보다 가족들이 즐겨 했던 것은 조개 전이었다. 기름진 것이 귀하기도 했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은 철질하는 어머니 곁에 꼭 붙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은 부추나 묵은지를 송송 썰고 조갯살을 넣는다. 여기서 풍미를 더 즐기고 싶다면 조갯살을 다져 넣으면 바다 맛은 배가된다.

최근에는 바지락을 이렇게 푸짐하게 먹어보진 못했다. 평소 어물전에서 먹을 만큼만 구입했었다. 친구 덕분에 부자가 된 것이다. 절반은 어머니와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고향이 그리울 때 꺼내어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을 요량이다. 몸살 기운이 있을 때는 누룽지탕으로 보신을 하면 몸이 한결 가벼워 질 것이다.

조개탕을 먹으며 어린시절 추억을 끄집어냈다. 대갈장군 아주머니의 함지박 안에 갯것들이 곡식으로 바뀌어져 돌아갈 때는 더 무거울 진대 마을을 벗어나는 아주머니의 뒤태가 덩실거렸다. 오히려 마을을 들어 설 때보다 가뿐해 보였다. 집에서 기다리는 어린것들에게 하얀 쌀밥을 먹일 생각에 발걸음이 절로 흥겨웠나 보다. 그때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거북목이 되어 잰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그녀의 삶은 나의 어머니가 걸었던 길과 닮았고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고자 아니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내는 나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송두리째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어미의 마음을 새삼 떠올려 본다. 바지락에게도 꿈은 있었을 것이다. 갯벌에서 밀물 썰물로 다져진 그가 반항도 못하고 껍질째 뜨거운 물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까지도, 누군가의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싱거운 오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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