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북한이 남북·미북정상회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고, 비핵화 시간표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한국·중국이 경쟁적으로 북한의 환심을 사는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북 압박 시스템이 헐거워지고 북한을 너무 일찍 풀어줘 북의 비핵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아직 말로만 비핵화를 약속했을 뿐인데 한·미·중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탁월한’ 능력으로 마치 다 이뤄놓은 듯 공적을 선전하는데 열심이다.

한미 군 당국이 오는 8월에 예정됐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한미 군사훈련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며 중단을 시사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조치가 나오지않은 가운데 너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선후가 바뀐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며 한미동맹을 공공연히 흔들고 있다. 제정신인지, 북한 비핵화하겠다는 진정한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은 북한을 압박하는 최고의 무기임에도 트럼프는 이를 너무 쉽게 내던지는 우를 범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의 역할, 비핵화의 과정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덩달아 UFG 일환인 을지연습 중단 발표에 이어 합참은 20일 한국군 단독 지휘소 훈련인 태극연습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키리졸브(KR)와 독수리연습(FE) 등도 줄줄이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안보에 큰 구멍이 예상된다.

트럼프가 이런 군사적 무지(無知)를 드러내고, 한국이 장단을 맞추고 있는 시간에 김정은 위원장은 야무지게 실속을 차리고 있다. 김은 19일 3개월 사이에 세 번째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양국의 결속을 다지고 경제제재 완화를 요청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으로 체제보장 약속을 받아내 숨통을 트고, 한반도 문제에서 패싱(passing) 당할 것을 걱정하는 중국을 달래 경협지원을 끌어내는 능란한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북한이 경제건설에 전념한다는 중대 결정을 지지한다”고 언급해 경제제재를 풀어줄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남북·미북정상회담 추진 등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북이 비핵화와 미사일 폐기를 완전하게 완료할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대북제재 해제에 있어서 과속하거나, 실질적 비핵화 이행없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한미연합훈련 연기, 주한미군 철수 등을 거론할 경우 부당함을 지적하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정부가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21일 러시아를 국빈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서도 이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런 불안한 판국에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완전한 비핵화’가 ‘CVID’와 같은 뜻이라는 주장을 내놔 또 다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후 사정을 무시하고 북한을 거드는 발언은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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