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새벽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축복이다. 맑은 공기, 신선한 풀냄새, 자유로운 음의 새 소리와 나뭇잎의 속삭임,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의 협주곡! 그 어떤 음악회도 이보다 더 감미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순간들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느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느끼며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를 확인 받는다. 적요한 새벽공기가 온 전신의 세포들을 정갈하게 씻어내는 것만 같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어서 더 좋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독대할 수 있어 행복하다.

 시간에 매여 있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새벽 시간을 얻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스러운 일인지 신에게 감사드린다. 주말이 되면 꼭두새벽부터 삼삼오오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평일 새벽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 좋다. 나만을 위해 허락된 세상 인 듯, 드는 순간의 착각은 나를 마법에 걸리게 만든다.

 홀로 새벽 숲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매여 있던 시간의 포승줄에서 풀려 난 기분이다. 온 몸으로 전율이 인다. 내 온 몸의 세포들이 이 숲속, 이 산길을 훨훨 날고 있다. 여기는 어디일까!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에너지를 듬뿍 받으며 올라 온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은 멋지다. 우뚝우뚝 솟은 빌딩 숲을 일구어 나가는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여유도 생긴다.

 그들 모두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행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또 다시 돌아가고 있다. 달려가는 길의 끝에 일등으로 도착했다고 주어지는 상금은 과연 무엇일까! 겨우 빈손 흔들며 떠나는 일이 고작일 텐데…, 그러므로 이제는 달려가는 행렬 속에서 잠시, 아주 잠시 쉬어 가려고 한다.

 쉬었다 가면 다시 시작인 셈이지 않을까! 이는 나의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은 설렘과 기대를 품게 한다. 그리고 마침은 안도와 반성, 덤으로 아쉬움이라는 미련도 안겨준다. 시작과 마침의 변주곡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리라.

 새벽 산책길은 내게 있어 언제나 시작이며 마침이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을 마치고 돌아와 바쁜 일상으로 들어가는 또 하루의 통로이기도 하다. 약간의 게으름 같은 시간을 허락 받은 나의 새벽 산책은 사소한 일상이지만 이는 나의, 내면의 고요와 평온을 찾아가게 하는 유일한 통로요, 바쁜 일상에서 잠시 허락받은 휴식이요, 일상을 위한 또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가 되어주는 엑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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