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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찾아서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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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7  13: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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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싶다. 청주시와 청원군 통합으로 직장선교회도 함께 통합하여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통합 전 청원군청직장선교회에 대한 추억과 애착을 놓지 못하고 있다.

 청원군청직장선교회는 1998년도에 조직되어 20여 년 간 활동을 해왔다. 그동안 여러 가지 선교행사와 봉사활동 등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던 터라 금년 말 공로연수를 앞둔 필자는 회원들과의 멋진 마무리를 위해 성지순례를 가기로 계획을 했다. 많은 성지가 있지만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정하고 설레는 맘으로 간식을 준비하면서 흥얼거릴 만큼 행복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의 발길이 의외로 많았다. 휴일도 많지만 평일에도 예약자가 많았다. 매우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안내하는 봉사자들의 설명으로 이곳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선교사 묘원에는 417명이 안장되어있다고 했다. 선교사는 145명이지만 그들 가족이 함께 안장되어 있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모국의 보장된 권리를 과감히 포기하고 이곳 백성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을 베푼 역사 앞에 절로 숙연해져 머리를 숙인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접하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뭉클함이 솟는다. 그중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선교의 개척자로 3대에 걸쳐 조선기독교대학에 헌신하여 지금의 연세대학교를 있게 했다. 아펜젤러는 배재 학당을 설립하고 민주주의와 독립정신을 키우게 했고, 에비슨 선교사는 근대 의학의 발전에 공헌하여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고 우리 국민을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헤론 선교사는 모국에서 의사로 보장된 삶을 내려놓고 홀연히 조선을 찾아와 알렌과 언더우드와 함께 평생을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했다. 그는 이곳 묘원에 최초로 묻힌 34세의 젊은 선교사이다.

 본국에 있었으면 좀 더 나은 삶이 보장되고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나라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우리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그들이었다. 또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평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세종대왕이 평민들의 말과 글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시하였지만, 그것을 서민의 문자로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한글 번역 성경이란다. 묘지를 돌아보는데 때마침 비가 내려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겸손하고 차분하게 했다.

 이곳 묘지는 한 민족의 지난했던 근대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었다. 직장선교회의 마무리를 위한 성지순례였지만 이곳에 오길 참으로 잘했지 싶다. 안장된 선교사들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되짚어보며 단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 한번 건네 본적 있는 가? 반문해 본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조용히 성경을 교독하며 읽고 서있던 부부의 모습을 가슴으로 그려보며 청원군청직장선교회의 커다란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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