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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을 다녀와서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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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8  13: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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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연례행사인 충북수필문학회 문학기행을 올해는 군산 일원을 다녀왔다. 지엠(GM)군산공장이 문을 닫아 군산 경제가 어려워 기왕이면 군산으로 정했다. 제일 먼저 관람한 채만식문학관은 군산항에 정박한 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문학의 배'를 타고 어디론가 희망의 나라로 항해하는 듯했다. 군산시가 우리 근대문학의 대가 백릉(白菱) 채만식의 작가 정신을 기리고 지역 문학인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건립했다는데, 청주에는 이런 규모의 문학관이 없어 부럽기도 하였다.

 해설사의 설명과 안내문을 보고 들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백릉 선생은 49세에 타계할 때까지 가난과 질병, 불행한 삶의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소설, 수필, 희곡, 동화 등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하니, 짧은 생애에 이처럼 많은 다작을 남긴 것에 놀랐다. 문학을 통하여 일제강점기 때 암울한 사회부조리 현상을 고발하고 비판하면서 고통 받는 서민의 애환을 토로한 것이다. 관람하면서 현재의 삶에 좀 더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우리 회원들의 창작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졌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가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명언이 반겨주었다.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신조로 과거 해상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근대 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서해 물류유통의 천년,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 무역항 군산'의 큰 꿈을 볼 수 있어 기뻤다. 경암동 철길마을에는 낡은 2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지금은 기차 운행이 중단됐지만 추억의 거리로 재탄생하여 다행이었다. 만약 재개발을 한다고 철거했다면……. 벽 곳곳에 있는 화물차와 꽃그림도 돋보였고, 옛날 교복과 한복 등을 빌려 사진도 찍는 모습을 보니 가족들과 또 와서 체험하고 싶었다.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인 (구)군산세관, 지금은 근대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구)조선은행 군산지점, 일본이 1899년 개항하여 화물작업을 위해 설치한 부잔교(뜬다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로 관광명소인 초원사진관,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과 농촌 수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히로쓰 가옥, 간이역이었던 임피역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유명한 동국사 등을 보며 착잡한 심정이었다.

 왜 우리는 발전된 서양 문물을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쇄국을 하다가 일본에게 나라까지 빼앗기고 국치(國恥)를 겪는 비극의 역사를 가져야 했나! 그러기에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는 혜안(慧眼)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장미동은 장미꽃과 관련된 이름이 아니고, '장미(藏米)' 즉 쌀을 저장했다가 일본으로 약탈해간 곳이고, 군산은 일제 강점기에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곡물 등을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항구로 곳곳에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채만식 작가의 업적과 얼을 기려보고,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수탈과 착취의 만행을 돌아보며, 다시는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본 뜻깊은 군산 문학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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