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당시 축구 세계 최강은 헝가리였다. 전쟁이 끝난 후 어렵게 경기에 출전한 대한민국은 예선에서 이런 헝가리에 0대9로 패하는 치욕을 겪었다. 서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선에서 헝가리에 서독은 3대8로 졌다. 하지만 서독은 결승에서 헝가리와 다시 만났다. 결승전이 열리기 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서독의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은 명언을 남겼다. "공은 둥글고, 축구는 90분 동안 계속된다"고 말했다.

 서독은 헝가리를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에서 '이변'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공은 둥글다'는 말이 이래서 유래가 됐다. 우리나라는 멕시코 월드컵(1986년) 당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가졌으나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스웨덴, 멕시코와 함께 F조의 강적과 싸웠다.

 16강 티켓은 잃었지만 한국 축구가 보여준 '마지막 투혼'은 빛났다. 희박한 1%의 희망을 내건 승부에서 비파 세계 1위의 독일 전차 군단을 경기 내내 꽁꽁 묶는 '늪 축구'로 공격해 2대0으로 겪어 첫 승을 따 낸 것은 자랑스러운 결과다. 선수들의 투혼과 함께 온 국민의 열렬한 응원에도 큰 힘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누구도 예상 못한 '4강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뿌듯한 기억도 갖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 9회 연속 출전한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성적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며 전 세계에서도 단 6개 국가밖에 없는 대기록이다.

 올여름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러시아 월드컵을 즐기며 많은 국민들이 땀을 씻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TV로 시청할 때 마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월드컵 같은 행사가 시작되면 나보다 더 큰 공동체를 느끼게 된다. 내가 직접 이룬 성취는 아니지만 사회의 다른 이가 이뤄내는 승리를 함께 기뻐하고 그들의 패배가 자신의 것인 듯 슬퍼하게도 된다. 우리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맞물린 꿈을 이뤄나갈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스포츠 행사는 종종 다른 나라와 사람들을 접하는 기회가 된다. 개최국과 참가국들의 건물, 패션, 음식 등 그 사회의 특이한 문화들을 볼 수 있는 창구도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던 월드컵 당시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던 부부젤라, 한국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의 응원은 유럽의 축구 경기장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월드컵 경기를 보는 순간, 신체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만족감을 느끼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이 가득하다. 우리 모두는 월드컵을 보면서 승패와 상관없이 그 기쁨의 시간을 고이 간직했으면 한다.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는 오래된 원칙이지만 때론 스포츠가 정치보다 훨씬 정치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남북한 대화의 물꼬를 튼 평창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랬다. 붉은 악마의 함성이 대한민국을 하나로 모으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장에는 선수들만 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응원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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