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수요단상
이승의 재물 감투는 저승 갈 땐 짐만 된다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7.03  13:51:59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가는 것도 아니요 오는 것도 아닌 것이 세월이고 우주 법칙의 이치이며 다만 생명만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의 법이다. 옛 도인들은 인간의 몸뚱이를 가리켜 "돌아다니는 변소요, 구정물통"이라 했다. 산해진미와 칠보단장으로 아무리 가꿔도 그 속을 보면 추하고 더러운 것이 바로 몸뚱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평생 온갖 정성을 쏟고 죄업을 짓지만 떠날 때는 자취도 없이 홀연히 떠나가는 가장 큰 배신자일 뿐이다.

마음에 들면 기어이 취해야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다보니 마음은 늘 고요치 못하고 시기와 질투, 탐욕, 치졸한 성품으로 온갖 업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몸뚱이인 것이다. 본래 태어날 때는 맑고 깨끗한 항아리와 같던 몸이 쓰레기, 찌꺼기만 담다 보니 뱃속은 탁한 기운으로 가득차고 육신은 온통 흉한 몰골이 되어 갖은 업병으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수행 본기경에 이르기를 "죽음은 다함이요, 정신은 떠나가는 것이다. 몸뚱이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들이 흩어지면 혼신이 편안치 못하고 바람 기운이 떠나 숨이 끊어지고 불 기운이 스러져서 몸이 차갑게 된다. 혼령은 떠나고 신체는 굳어지며 십여 일이면 살이 썩고 부풀어 악취가 나며 취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죽음으로 향하는 전과는 전생의 업력에 따른다.

평생 나쁜 업만을 만든 자들은 죽음에 가까이 왔을 때 갖가지 생리 변화에 따른 극심한 괴로움을 겪는다. 죽음의 고통이 두려워 눈을 감지 못하고 눈앞의 괴물을 내쫓으려 큰 소리로 욕설을 하기도 하며 아귀처럼 변한다. 죽는 이가 화를 내고 세상을 마치면 반드시 삼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살아서 선행을 베푼 자는 임종 후 천상의 소리를 들으며 천신들의 옹호를 받아 좋은 곳으로 인도된다.

죽음을 맞는 자가 한 마음으로 염력을 모으면 아주 상서로운 현상을 만난다. 즉 마음이 흔들림 없이 고요하며 가는 시간을 뚜렷이 알게 되고 온갖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죽음을 예견하여 자신의 몸을 깨끗이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데 이때 평화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또 독한 냄새가 사라지고 미묘한 향을 맡게 되며 천상의 음을 듣고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이승을 마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대개 다음 생에는 반드시 맑은 정토에 태어나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두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죽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 발버둥 쳐 봐도 벗어날 자가 없다. 제왕이든 백성이든 가난한 자든 부자든 귀천을 막론하고 이 환란만은 면할 길이 없다. 이승의 감투와 재물은 저승 갈 때는 짐만 된다는 말이 있다. 이 엄연한 죽음 앞에서 평생 애지중지 하던 몸뚱이와 재물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번 몸뚱이를 잃으면 천만겁을 헤맨다고 한다. 생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깨닫는 자만이 나고 죽는 윤회 고(苦)를 뛰어넘을 수 있다. 새로운 천 년을 맞는 진정한 의미는 생멸의 이치를 알고 자신을 돌아보는데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