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후덥지근한 바람이 회벽사이를 순찰 하듯 돌아다닌다. 도로는 태양의 열기를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그 위를 자동차는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간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동차 바퀴에 휘청거리고 마는 도로! 양산으로, 모자로 태양을 가려보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까지 보태서 작은 몸을 달구고야 만다. 숨이 턱턱 막히는 칠월의 오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두 낯설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숨 막히는 이 곳에서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앞만 보고 걸어간다. 자동차도 쉼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이 도시는 열기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시간의 바퀴에 매달려 있다. 이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루, 이틀, 사흘…, 계속 끌려가고 있다. 똑딱이며 쉼 없이 돌고 있는 시계의 톱니바퀴에 매달린 채, 계속 돌고 도는 하루가 이틀, 사흘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수년, 수천이 되고…!, 그러는 동안 야트막한 산과 들은 시멘트로 덧칠이 되고 우뚝우뚝 회벽으로 쌓아올린 물체들이 공간을 메워갔다.

봄이면 논둑에서 냉이와 쑥을 캐고, 칠월 해거름 녘이면 논밭에서 푸른 바람이 너울 치며 초록의 향기를 품어 내던 곳이었다. 좁다란 오솔길을 걸으며 들풀과 대화도 나누고 초록바람과 그 향기에 마음을 씻어 내리던 곳! 삶의 잔존들을 털어내던 곳, 고향 같은 곳이었다. 요즘은 고향도 계발이 되고 정든 이들도 떠나고 새로운 도시로 변모되어 낯설다. 이제는 고향의 모습도 변하여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만 있는 고향마을이 되었다.

칠월의 들녘은 그대로가 고향이다. 고향엔 그저 정을 나누던 이들이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울 너머로 호박전이 오가고, 고샅에선 아이들 노는 소리가 칠월의 하늘을 가른다. 가진 것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챙기던 시절이었다. 계절은 어김없이 칠월의 들녘으로 어느새 옥수수수염을 말리고, 감자도 동싯하게 키워냈다. 방학 때면 외할머니 가마솥에선 감자와 옥수수 찌는 냄새가 달달하다. 갓 쪄낸 감자를 반으로 탁! 쪼개면 파삭한 흰 속살이 칠월의 하늘!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별빛이 마당으로 수없이 쏟아져 내리던 밤! 멍석에 누워 외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와 알알이 따먹던 옥수수, 갓 쪄내 따끈한 감자의 파삭한 그 단맛이 혀끝에서 먼저 요동을 친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물질들이 풍족하고 생활하기 편리하게 되어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없는 게 없다. 무엇이든 깔끔하게 포장되어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다. 돈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요즘의 삶이다. 사는데 있어 모든 것들이 편리해지고 가까워졌는데 사람과 사람사이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가 앞을 선다. 정말 바쁜 탓일까! 칠월이 다 가기 전에 수박 한 통 사들고 옛 정 찾아서 떠나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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