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웅ㆍ소설가

최근에 발표되는 방송 뉴스와 신문 기사를 보면 전 대통령 노무현을 비롯한 주변 인물의 뇌물 사건이 톱으로 올라오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노씨는 해명하기를 내가 받지 않고 아내가 받았다고 하는가 하면, 또는 조카가 투자를 유치했던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말한다. 그리고 부인이 받은 돈도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고 돈이 필요해서 빌린 것이라고 한다. 이자를 주지 않았으니 이자 없이 빌린 것이라는 말인데, 그 모든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해 줘도, 엄격하게 말해서 이자 없이 돈을 빌리는 것도 그녀가 일개 시골의 아낙네였다면 가능했을까. 영부인이었기 때문에 이자없이 돈을 빌릴 수 있었을 것이며, 대통령의 부인이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 가지고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땅의 한쪽에서 권력형의 최고봉에 있는 상류층의 어떤 여자는 이자 없이도 수억원을 빌려서 쓰지만, 다른 한쪽의 서민층에 있는 어떤 여자는 3백만원의 돈이 필요해서 고리 사채를 쓰고, 1년간 갚지 못하자 이자와 원금이 5천만으로 늘어나서 성매매로 내몰린다. 이와같은 사회 부조리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그리고 어디에 있는 것인가.

권력형 뇌물이 들통이 나면 빌렸다고 잡아떼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뒷탈을 감안해서 실제 차용증을 쓰고 이자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어느 편을 든다거나 특별한 주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때 386세대가 대통령을 뽑고 기득권에 진입하는 것을 보고 내심 흐믓해 하였다. 그들은 한 세대 동안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을 한 경력이 있으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 소외되어 갖은 핍박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위정자가 되었을 때 이제는 부정부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굶주린 야수처럼 더 많은 뇌물을 삼켰던 것이다.

건국 초기 대통령에 출마했던 신익희씨가 죽고 나서 남겨 놓은 재산이 아무 것도 없는데다 판자로 만든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고 한다. 야당 당수였던 조병옥박사도 항상 먹을 쌀이 떨어져서 끼니가 불편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는 국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에 출마한 정치인이, 그리고 야당 당수가 끼니를 염려할 정도였다면 그들이 얼마나 청렴을 중시여겼는가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지나칠 정도이겠지만, 거의 병적이다시피 결벽하기를 바랬던 바로 그러한 정신과 도덕성이 있어야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사채를 쓰고 자살을 하거나 성매매에 몰리는서민들에 대한 예의일지 모른다.

되풀이 되는 정치권의 뇌물 사건을 접하면서 문뜩 과거 건국 초기 의 일부 정치인들의 청렴을 떠올린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치인의 철학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철학도 없고, 정치적 지조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 돈에 휘둘리고 사람에게 휘둘리고, 개인적 욕망에 휘둘리면서 도덕성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