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도대체 ‘취사’라는 글자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수화기 넘어 딸이 수없이 설명해 주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단추마다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아랫집을 향해 뒤뚱거린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여든의 할망구도 남의 솥은 잘 모르겠단다. 알아도 알려줄 처지가 못 된다. 꼬리뼈가 잘못되어 수술하고 열흘이나 입원해 있다가 겨우 퇴원하여 친정에 온 미자에게 집안이 곰의 쓸개 같다고 핀잔을 듣고 있는 중이다.

민망하여 서성대는 나를 앞세워 그 집 모녀는 우리 집으로 향한다. 멀쩡한 밥솥으로 밥도 못하면서 혼자 살려한다고 구사리를 한다. 말은 그래도 밥솥을 열어 쌀이 안쳐진 것을 확인하더니 뚜껑을 닫고 취사라는 것을 꾹 누른다. 쉽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가스불을 켜고 잠그는 것도 시원치가 않다.

막내 딸내미 내외가 왔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는다. 밥을 짓고 감자 고추장찌개를 했다. 어찌나 맛나던지 정신없이 먹다가 느닷없이 돌른다. 토해내도 개운치가 않아 소화제를 먹고 사위와 딸이 주물러 주어 조금 안정이 되었다. 진즉부터 입으로는 그만 가라고 했지만 마음은 막내네를 잡고 있었나 보다. 딸은 부엌과 안방을 오가며 치매약과 혈압약은 잘 먹었는지, 가스불을 확인하라는 글씨를 대문짝만하게 쓰고 밥솥의 취사에는 곰돌이 그림을 붙인다.

딸내미들을 불안하게 하면서 그리고 아들과 한집에 살고 싶은 속마음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을 다지는 동안 창자가 녹아내리듯이 아팠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편하게 하는 것임을 말이다.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 온 연유를 물으면 박처루가 그저 그리워서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늙은이들끼리는 알 수 있다. 어미 된 마음으로 남은 시간동안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 할 것이다. 모든 것은 누가 뭐래도 스스로 결정한 것이며 이로 인해 어느 한 놈도 손가락질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화살이 간다면 그 또한 부끄러워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할 것이다.

노인정에서 한솥밥을 먹던 할망구는 손주들 돌보며 살림을 했었다. 아이들이 자라 손 볼일 없을 때 다른 자식집으로 밀물썰물처럼 돌려 쳤었다. 모아 두었던 재산도 속는 줄 알면서 자식들에게 빼앗기고 단칸방살이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내 집이 남아 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다만 투닥거리던 아들 내외가 저희들끼리 얼굴 붉히지 말고 처음 혼인할 때처럼 재미지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만 된다면 머지않아 본향으로 돌아가 고개 들고 할아범을 만날 수 있으리라.

오랫동안 손 놓았던 살림살이를 소꿉장난 하듯이 쓸고 닦는 것도 할만하다. 가까이 있을 때보다 자식들의 목소리도. 얼굴도 더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이런 삶이 얼마동안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소중하게 살아내고 싶다. 우리 며느리 그동안 밥해주느라 애썼다. 고맙다. 구순 할머니의 홀로서기를 옮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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