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경에 이르기를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나니 태어난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간다. 임금으로 태어나 천하를 호령해도 죽음을 물리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인생은 세상에 온들 오는걸 알지 못하고 떠나간들 떠나가는 걸 알지 못하거늘 무엇으로 오고가는 중생들을 내 가족이라 하여 슬픈 눈물을 흘리는가?

누구나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죽음의 노예가 될 필요도 없다. 죽음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베풀 줄 모르고 그저 거두어 쌓아 두기만 하면 탐욕의 업보만 남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탐욕스럽게 모아도 죽음 뒤엔 거지 신세로 돌아가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가족들이 머리 풀고 슬피 울며 우리 식구 살려 달라 울부짖지만 삼베에 꽁꽁 묶여 밖으로 들려 나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많은 재물 버리고 옷 한 벌로 동전 30원 입에 넣고 떠나가니 살아서 울고 웃던 친척들 누구 하나 힘이 되어 돕지 못한다. 쌓은 재물은 상속자가 가져가고 자신은 업을 따라 혼자 가니 자식이나, 배우자, 재물, 권력도 죽은 자에겐 무엇 하나 따라가지 않는다.

깨달은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 죽음을 만나지만 어리석은 자는 두려움에 떨고 깨달은 자는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살아생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살다 간 영혼은 그 집착으로 인해 삼선도에 태어나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무명의 길에서 방황하는 영혼의 천도야말로 후손들에게 주어진 커다란 공덕의 문이다. 전생의 업보로 인해 고통 받는 영혼을 참회와 기도를 통해 악도로 추락하는 과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함이 마땅하다. 허공계를 방황하며 제 갈 길을 모르는 고혼(孤魂)들을 맑은 길로 인도하여 삶의 복을 누리게 해야 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가족에게 씌어 고통 받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생전에 깨달음의 삶을 산다면 죽은 후에 반드시 고귀한 영체로 돌아가 또 다른 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리하다고 교만치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며,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는 생활.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 조심하며,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리는 삶, 늘 주위를 돌볼 수 있는 생활,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일 것이다. 이러한 삶은 이승에서는 고난을 여의고 목숨을 마친 후엔 천상에 나며 선신들이 돕고 환호하며 길을 인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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