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청주 진입로를 따라 오르면 / 저절로 멈춰지는 가로수 터널 / 너른 하늘 잎으로 둘러막고서 햇살 뚫을 틈조차 / 물감 칠한 길 / 지나는 사람마다 눌러앉아 / "여름나고 갈게요"붙박이 되네 / 필자의 동시 '가로수 터널' 일부다. 동심 실종이라는 엄청난 질책 사이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출렁거린다.

뭐니 뭐니 해도 방학 덕분이다. 자녀는 반년 별러온 특권에 신나는데  부모들, 대형 전투처럼 숨을 몰아쉰다. 한 달 남짓 강력하게 몰아붙일 조짐으로 먹구름까지 끼어든다. 부모 욕구를 대치할 엄마의 그릇된 선전포고다. 대부분 자녀를 묶어놓고 기계처럼 돌릴 단답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방학은 아이를 아는 것에서 출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욕심내야 한다. 실패할까 두려워 끌고 다니며 '이것만 해, 그건 안 돼' 다. 폭력치고 너무 혹독하다. 유도(柔道) 교육의 입문과정이 낙법(落法)인 것처럼 상대를 넘어뜨릴 생각보다 바르게 넘어질 연습부터 필요한데 말이다.

그동안 산업사회 구조에서 바람직한 교육 기준은 '빨리 많이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사람'으로 21세기 교육콘셉트를 꼽고 있다. 시대에 부응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식을 깨우쳐 창출하는 방법' 을 강조한다. 유태인의 자녀 교육 특징 중 하나로 판단이나 선입견 없는 대화를 꼽는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어 질문하게 한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게 아니고'  대신 '잘 들었어. 충분히 이해해, 그럴 수도 있겠네' 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서두르지 않고 경청의 끈을 이어 간다.

상황 극복까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신뢰구축에 중점을 두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나간다. 한마디로 즐기는 대화다. 시시콜콜 간섭이 동기를 메마르게 하고 부정적 감정으로 되레 창의적 사고 저해 소지가 이유였다. 최고의 선생님이자 최고 스승은 부모를 넘지 못한다. 큰 소리로 야단치는 것보다 훨씬 교육적인 벌은 실수에 대한 격려다.  '괜찮아, 다시하면 되지'란 한마디에 왜 그렇게 옹색할까. '넌 할 수 있어' 얼마나 가슴 뛰는 고무적 감정코칭일까.

필자의 초등학교 4학년 방학 때 아버지께서 주신 과제는 별났다. 두발 자전거 혼자 타기였다. 처음엔 끌고 다니기조차 버거웠지만 자빠지고 부딪치는 횟수를 따라 자신감도 늘어갔다. 방학이 끝날 무렵, 동네 산길 내리막을 달리던 중 핸들 조작 미숙으로 낭떠러지를 굴러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여러 날 불편함을 겪었으나 학급 아이들은 자전거 탄 풍경을 부러워했다.  생각할수록 셀프 역량을 채워주신 세월 속 아버지의 최고 방학 선물이었다. 자기 문화 창조와 주체적 에너지가 그냥 솟는 게 아니다.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먼 나라 이야기다. 어떤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를 수 없는 방학, 아이들마다 코를 자주 벌름거려 행복을 붙게 해 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가치 있는 근육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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