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을 뛰어넘는 새로운 창조
▲ 송정란건양대교수 |
시뮬라크르 원래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에 의해 정의됐던 개념이다. 플라톤은 인간 세상은 절대적 실재라 할 수 있는 이데아를 복제한 것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와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고, 복제물인 인간세상을 다시 복제한 것이 시뮬라크르로서 그림과 같은 것이 바로 시뮬라크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은 복제의 복제에 불과하고 원본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시뮬라크르를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들뢰즈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물이 아니라, 원본을 뛰어넘어 자신의 공간을 새로이 창조하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가진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나 tv 드라마의 스타가 지니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는 그가 실제 어떤 인물이든지에 상관없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일상에서는 비도덕적이고 몰염치한 사람일지라도 영화 속의 로맨틱하고 도덕적인 새로운 인물로 자기정체성을 갖는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 나타난 가상의 이미지인 복제물에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실재와 복제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원본이 사라지고 복제물이 더 진짜처럼 군림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채팅을 하다가 실제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된 커플이라든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 쟁탈 문제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싸움을 벌이는 것도 시뮬라크르한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실상 현대에 이르러서 나타난 현상은 아닌 것이다. 인류 역사의 흐름을 주도해온 종교야말로 가장 오래된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주교든 불교든 기독교든 모든 종교는 창시자의 모습을 본뜬 형상을 제단에 모셔두고 예배를 올린다. 신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기도하는 대상은 실제가 아니라 복제이지만, 그 위력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어떠한 종교든 초기 단계에는 소박하고 단순했을 것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살아계셨을 당시의 신자들은 존경하지만 친근한 마음으로 그들의 경배자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교리와 체제가 정비되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굳어지자 점점 더 원본과 멀어지면서 강력한 종교적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여수 향일암 대웅전에 한 개신교 신자가 난입해 알루미늄 파이프로 불상 등을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된다는 종교적 계시를 받아 난동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시뮬라크르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편파적이고 독단적인 종교관을 가진 일부 맹신도들의 행위이지만, 여기에 시뮬라크르를 대입하면 복제물에 대한 파괴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불상은 부처의 복제에 불과한 것이며, 아무리 많은 복제물을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원본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오늘날의 미디어 세계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여수 향일암 사건을 보면서 시뮬라크르라는 용어가 새삼 떠오르면서 복제물이 갖는 자기정체성과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