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걷는 숲이라는 의미의 화담숲으로 소풍을 갔다. 외국여행이라도 떠나는 날처럼 이른 아침 서두르며 마음이 들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은 아니지만 비행기를 탄 것처럼 마음은 설렌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는 시간 인지가 의미를 다르게 한다. 지난 주말에 제부와 화담숲을 다녀온 막내 동생이 극찬을 하면서 우리와의 시간을 서둘렀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혼자 보기가 아까워 함께 공유하고 싶어 하는 동생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떠나기도 전부터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화담숲의 새처럼 재잘거리면서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우리를 안내하는 막내 동생이 기특하고 고맙다. 엄마를 모시고 여동생들과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함께 보낸 오랜 시간의 역사 때문인지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면서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많은 일들을 반추하게 된다. 나만큼이나 이 여행을 설레며 기다리셨던 엄마는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옥수수를 따서 삶고, 화초처럼 텃밭에 키우시던 노란 참외를 처음으로 따서 담아 오셨다. 언제나 안전 운전을 담당하는 나는 핸들을 잡은 손이 즐겁기만 하다.

 오늘 만큼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엄마가 좋아하시는 흘러간 유행가 가락 시디를 밀어 넣고 함께 흥겨워본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유행가를 들으면서 곱게 늙어 가시는 엄마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화담숲에 눈부신 푸르름처럼 엄마도 한때는 신록처럼 푸르렀으리라. 아직은 어디를 가든 립스틱을 곱게 바르시고 앞장서서 다니시는 엄마가 고맙고 감사하다. 화담숲의 소나무 숲이 우리를 반긴다. 자연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 친화적으로 잘 가꾸어진 풍광이 아름답다.

 이른 아침 숲은 싱그럽고 여름 숲의 향기로 가득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 자작나무 숲을 지났다. 가볍게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숲속의 교향곡으로 흐른다. 내려오는 길은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에 시름을 잊는다. 산수국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들을 내려갈 때 보았다. 느림을 향유할 때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르기만 했던 삶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치고 살았을까!

 화담숲 어느 나무아래 조용히 잠들어계신 어떤 어르신이 떠올랐다. 이 숲의 주인이기도 하셨던 대기업의 대표 어르신은 평소에 자연을 사랑하고 새를 유독 사랑하셨다. 경영을 구상할 때에 자주 들르셔서 전지가위를 허리춤에 차고 숲을 관리 하셨다는 점퍼차림의 그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값진 지혜를 얻으면 좋겠다"는 교훈을 남겼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비공개로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며 비석하나 남기지 않은 채 수목장을 유언했다는 일화는 귀감이 되었었다. 또한 기업 문화와 정신마저도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숲을 걸으며 다정하게 나누었던 담소가 행복했던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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