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공부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남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 '남' 중에는 부모님이나 '대학입학담당자'가 있다. 인생이 짧은데, 나보다도 남을 위해 세월을 보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없어서 남의 눈치를 볼 것이다.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공부를 못하면 인생을 망친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어른들이다.

남이 나를 평가하는 시험 성적만 높일 수 있다면 어떤 부정한 일도 저지르겠다는 마음을 먹고 야간에 허술한 학교 창문으로 들어가 시험지를 몰래 빼내는 학생들, 교사와 담합하여 성적을 조작하거나 시험 문제를 알아내는 부모들이 연일 뉴스에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하는 공부는 즐거울 수가 없다. 즐겁지 않은 공부를 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부는 지속적으로 수능시험 선택과목을 축소한다. 현재 교육부가 잠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2022년 수능 개편안에는 수학의 기하도 빠지고, 과학의 선택 비율도 축소되었다.

이런 결정이 나오자마자 상대적으로 사회 과목의 선택 비율이 높아졌다고 과학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한 과학교육계 인사는 "저희가 아이들에게 '수학과학'을 잘못 가르쳐서 그들이 문외한으로 성장하여 수학과학을 살해하려는 듯하다."고 자조 섞인 말을 했다. 살해는 누가 당하는가?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우리? 학생들? 항상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던 과목 선정의 다툼을 이제는 그만 하면 좋겠다.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생각한다면, 그들이 옳다. 그동안 과학과 수학을 즐겁게 배워본 적도 없고, 어른이 되어 보니 하나도 쓸모가 없다면 수학과 과학을 축소하는 것이 맞다. 큰일 났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면, 학생들은 지금까지 받은 고통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과학과 수학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우리가 반성하고, 이제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는 과학과 수학은 그만 가르치자.

뜬금없이 옛날 생각이 하나 난다. 아들이 하도 국수를 좋아해서 원 없이 먹으라고 5인분의 국수를 한 번에 끓여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절대로 국수를 찾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니 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총칼을 앞세워 사교육을 철폐하던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 수준에서 '최선'의 노력, 남이 보기에는 '적당하거나 다소 빈약한' 수준의 공부로 대학을 갔다. 그래서 아마도 공부에 물리지 않았나보다. 어떤 것이든 물리면 그것을 즐길 수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하는 아이보다, 그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걸 몰랐던 것 같다. 그들의 조급함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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